에너지 정책이 길을 잃고 겉돌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은 RE100(재생에너지 전력 100% 사용) 요구를 받고 있지만 한전의 역대급 적자와 송전망 확충 지연으로 인한 발전사들의 손실 확대, 에너지요금 인상 난항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가운데 미국에서 화석연료와 원전 사용을 강조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차기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국제적으로 친환경 정책과 에너지정책 방향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특히 청정에너지 사용 방식에서 RE100뿐만 아니라 원전, 탄소포집저장활용(CCUS), 청정수소까지 포함하는 CFE(무탄소에너지 100% 사용)도 인정받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RE100이 낫냐, CFE가 낫냐라는 대립적 논쟁에서 벗어나 두 방식을 모두 포용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3일 에너지업계에 따르면 우리 정치권에서는 여전히 지난 정부의 탈원전 논쟁과 마찬가지로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원자력발전과 재생에너지 비중, RE100이냐 CFE(Carbon Free Energy, 무탄소에너지)냐를 두고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RE100과 CFE는 모두 탈탄소화를 목표로 하지만, RE100은 재생에너지 사용에만 초점을 맞춘 반면 CFE는 탄소 배출 없는 모든 전력을 포함하고 있어 보다 유연하고 실질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통령실은 원전과 CCUS, 청정수소, 재생에너지를 포함하는 CFE를 추진하고 있다. 이에 반해 거대 야당은 재생에너지만을 활용해 제품 생산을 요구하는 RE100이 대세라며 맞서고 있다.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한 11차 전기본 정부안도 여전히 재생에너지와 원자력발전 비중 등에 대한 이견으로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확정이 미뤄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RE100과 CFE를 대립적으로 볼 이유가 전혀 없다고 보고 있다. 두 방식 모두 청정 에너지 사용을 요구하고 있는 가운데 CFE가 RE100보다 범위가 크다. 다만 RE100은 이미 인증방식 등에서 국제적으로 인정 받고 실행되고 있는 캠페인인 반면, CFE는 아직 인증방식이 등이 아직 명확하게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일단 정부가 기업에게 재생에너지 직접생산 혹은 구매비용 감축 등 RE100을 이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여건을 지원하고, 추후 CFE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인 노력과 약속해 주길 촉구하고 있다.
한 제조업계 관계자는 “지금과 같은 불경기에 우리의 수출 주도형 정책이 성공하려면 정치권이 중심을 잡고 방향성을 확실히 정해줘야 한다"며 “그러나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의 임기가 맞물리지 않은 상태에서 여권과 야권이 서로 견제하면서 힘 겨루기를 하거나 개개인별로 연관된 이해관계 때문에 정책 해결이 뒤로 밀리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정치권에서도 예산안은 물론 야당 대표의 사법리스크, 대통령실의 가족 리스크 등 정쟁이 치열한 상황이라 당분간 여야가 에너지 정책에 합의를 이루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에는 2038년까지 CFE의 비중을 70%까지 끌어올린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원전과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한 무탄소 전원의 균형 있는 확장을 목표로 하고, 소형모듈원전(SMR), 수소발전 등 새로운 에너지원도 고려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재생에너지 혹은 원자력발전이 더 확대돼야 한다는 각각의 목소리도 크다.
한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관계자는 “탄소중립의 입장에서 보면 이 둘의 차이는 크지 않다. 목표도 명확하다. 단지 원자력의 위해성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며 “2050년 탄소중립으로 가는 길목에 RE100도 있고 CFE도 있다. 양자택일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두가지 모두 활용해야만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국회도 이 부분에서 타협하고 모두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는 RE100 달성에 어려움이 있어 원전을 포함하는 CFE를 추진하고 있다. 다만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경제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서는 RE100과 CFE를 모두 대응할 수 있는 방향을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제조업 중심인 우리나라는 에너지 정책과 가격 변화에 따라 사업 비전과 흥망이 널 뛴다"며 “에너지가 정쟁의 도구로 이용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 에너지 안보와 국제적인 시장 경쟁에 유리한 방향으로 일관성 있는 정책이 유지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지성 기자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