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둘러싸고 특히 4차 기본계획 발표 이후 다가오는 할당계획 발표를 앞두고, 정치권과 시민단체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 유상할당(정부가 온실가스 배출권을 무상으로 배분하는 대신 기업이 비용을 지불하고 구매하도록 하여, 배출권의 경제적 가치를 부여하고 정부 재정을 확보하는 제도)의 비율을 어느 정도로 할지를 놓고 말들이 많은 것이다.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유상할당 비율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일견 설득력을 지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원리를 간과한 채 이뤄진 오해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말하면 유상할당 자체는 배출권거래제 하 온실가스 감축과는 아무런 관계 없다. 예컨데, 발전전환 부문에 유상할당 비율을 100%로 늘리면 분명 전환부문은 생산에 따른 평균가격 상승으로 온실가스 감축이 발생한다. 하지만, 이렇게 감축된 배출권의 수요는 시장 전체의 수요감소로 반영되어 배출권의 가격하락에 반영되고, 따라서 정확하게 감축된 양 만큼 산업 등 기타부문에서 오히려 배출량이 늘어나게 된다. 제로섬인 것이다.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원리 자체가 그러하다. 누가 얼마를 배출하든 상관없이 전체의 총량만을 통제할 뿐이다. 예컨데 전환부문이 유상할당 때문에 전력생산 비용이 상승해 석탄발전소를 폐쇄하는 등 감축에 나선다 하더라도, 어차피 사전에 결정된 전체 배출허용총량은 어디 가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줄이면 누군가는 늘린다. 그래서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유상할당 비율을 늘려야한다는 명제는 틀렸고 오해라는 것이다. 대신 “석탄화력을 폐쇄하고 천연가스나 재생에너지로의 발전으로 전환"을 촉진하기 위해 유상할당을 늘린다든가, 즉 유상할당을 늘리는 부문에 왜 이 부문을 문닫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춘 명분이 필요하다.
두개는 완전히 다르다. 유상할당 자체는 전체 배출권거래제 하 온실가스 감축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즉 전체적인 감축에는 역할이 없고, 부문 간에 상대적인 감축 부담의 차별화만 줄 뿐이다. 사실 이것은 기존 무상할당 하에서의 조정계수 조정만으로도 간단히 해결 가능하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유상할당을 논의하는가? 그 이유는 명확하다. 유상할당의 진정한 목적은 온실가스 감축이 아니라, 정부 재원의 확충에 있다. 이는 특정 부문에 더 많은 감축 책임을 부여하려는 정치적 명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예컨대, 유상할당을 통해 석탄화력발전소 가동을 줄이고, LNG 발전이나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을 촉진하려는 정책적 목표가 있다면, 그 목표와 유상할당의 비율 증가는 명확히 분리되어 논의돼야 한다.
문제는 유상할당이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정치적 명분 아래 남용될 가능성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명분이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서 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감축 목표를 달성하려면 유상할당의 비율을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감축 가능한 경로, 예컨대 에너지 전환을 유도하거나 기존 무상할당 체계에서의 조정계수를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는 것은 단지 재원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봐야 하며, 이를 통해 거둬들인 자금을 사회적 생산성이 높은 분야에 재투자하는 청사진이 국민들에게 설득력 있게 제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유상할당은 어디에 쓰일 수 있는가? 온실가스 감축을 그냥 민간에 맡겨 두기 보다 정부가 예산 사업으로서 이를 더욱 효과적으로 쓸 수 있다면 그제서야 이는 당연히 인정받을 것이다. 배출권거래제와 같은 규제 정책이 민간 영역의 자율적 감축 활동을 대신할 수 없는 만큼, 정부가 보조금 사업이나 예산 사업을 통해 직접적인 감축 프로젝트를 운영하는 데 재원을 활용할 수 있다. 특히, 대규모 사업체가 주로 참여하는 ETS 외에도 소규모 기업이나 일반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온실가스 감축 사업은 추가적인 정부 재원이 요구될 수 있다. 따라서 전반적인 유상할당 비율을 높이려면 별도의 국민적 합의가 필요하다. 앞서 발전부문의 에너지 전환과 같은 특정 부문에 대한 명분과는 별도이다. 즉, 정부가 재원을 걷어 사회 전체적으로 차별적으로 어떤 생산성 있는 일을 하겠는가이다.
아무튼 결론은 하나다. 제발 온실가스 감축을 유상할당 비율을 늘리는 명분으로 활용하지 말자는 것이다. 명제 자체가 틀렸음에도 많은 정책 결정자들과 정치권에서는 이를 당연하게 반복 언급하고 있다. 실제로 정책이 이러한 잘못된 이해에서 결정되면, 당연히 불필요한 정책의 부작용만 양산시키며 제도에 대한 저항만 불러올 뿐, 실질적인 기후변화 억제 실적 측면에서는 전혀 도움도 안된다. 왜 특정 부문이 유상할당을 통해 추가적인 세금을 내야 하며, 이렇게 걷힌 정부 예산이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부문이 존재한다는 것이 먼저 청사진으로 국민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유종민
[EE칼럼] 4차산업혁명과 기후변화협약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에너지 신기술은
2024.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