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CCS] 피할 수 없는 韓 기술 효율 과제...美GTI Energy “우리는 이미 준비됐었다”

2024.06.12 08:00 댓글 0
▲미국 시카고 인근 교외지역 데스 플레인스(Des planes)에 위치한 GTI 에너지 전경,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코스트코와 쌍두마차인 샘스 클럽이 소재해 있어 인상적이다.GTI 에너지 제공


[시카고(미국)=에너지경제 안효건 기자]“그런 질문은 답하기 어렵습니다."

미국 시카고 소재 GTI 에너지(Gas Technology Institute·가스기술연구원)를 직접 방문한 기자에게 사전 질문을 검토해본 오스만 아크폴랏 박사의 첫번째 반응이다.

아크폴랏 박사는 탄소 포집 저장(CCS) 기술을 비롯해 에너지 전환 분야의 다양한 기술 연구를 24년 이상 수행한 GTI 에너지 R&D 수석 프로젝트 매니저다.

현재는 GTI 에너지에서 미국 에너지부와 산업계 재정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 등에 대한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앞서 기자는 GTI 에너지 본부를 직접 방문하기 전 이메일로 한국의 지정학적 특성과 연계한 CCS 전략을 묻는 사전 질문을 보냈다.

그러나 CCS 기술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GTI 에너지조차, 이런 질문에 쉽사리 답을 내놓기 어려워했다.

주제는 꽤나 상세했고, GTI 에너지 측은 광범위한 맥락에서의 다양한 시나리오에 대해 상당한 시간을 들여 더 심층적인 평가를 해보지 않고서는, 정보에 입각한 의견을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그만큼 한국에게 CCS가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라는 것을 시사했다.

CCS 도입을 위해서는 여러 난관을 넘어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비용 절감'은 핵심으로 꼽힌다.

한국과 조건이 비교적 유사한 일본은 CCS가 본격 상용화되기 위해 비용이 현재보다 최소 30%대 이상 감소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2022년 경제산업성 기준 40%)

아크폴랏 박사 역시 “미국과 GTI도 시각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위해 “장비 관련 비용을 줄이면서도 이산화탄소(CO2) 포집 속도와 필요 에너지를 동일하게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기술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한국은 그 여건이 특히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CCS 비용 절감과 관련해 현재 세계적 추세는 크게 '두 줄기'로 나뉜다.

GTI처럼 기술 효율성을 높이려는 노력과 국가 간 운송, 저장 인프라를 공유하는 '규모의 경제' 조성이 그것이다.

전자는 미국과 호주, 노르웨이 등 이른바 'CCS 선진국'을 중심으로, 후자는 이들 주위를 둘러싼 '주변국'들과 연계돼 추진되고 있다.

가령 유럽에서는 포집한 탄소를 육로와 해상을 통해 노르웨이 등 북해 연안국으로 운송하고 저장소를 공유하는 구상이 그려지고 있다.

노르웨이의 노던라이트 프로젝트 및 영국 주도 북해 허브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유럽에 비해 물리적·제도적 연결이 제한적인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우 자체 저장소와 호주와 말레이시아 등을 향한 해상 운송이 '투 트랙'으로 기획되고 있다.

한국 역시 이와 유사한 형식의 접근을 시도 중이다.

그러나 대륙 내 공동 저장소를 구축하는 유럽과 달리 극동 아시아에서 오세아니아 대륙 인근까지 이르는 해운 운송으로 인한 효율 손실이 만만찮다.

그렇다고 해외 운송을 최소화하고 국내 저장을 극대화하자니 국내 해안선이 짧다는 단점, 즉 자체 저장 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떨쳐내기 어렵다.

실제 한국에서는 동해 가스전을 제외하면 아직까지 정부 차원에서 추진되는 프로젝트가 가시권에 올라오지 못했다.

셰퍼드 컨소시엄 등 국내 민간 기업이 추진하는 CCS 프로젝트들 역시 말레이시아 등 해외 저장소를 근간으로 진행되고 있다.

반면 이웃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홋카이도 북부, 토호쿠, 니가타 및 수도권 등 국내 5개 지역과 말레이시아, 오세아니아 등 해외 2개 지역을 CCS 시설 구축 후보지로 선정한 상태다.

지정학적 불리함을 끼고도 한국이 CCS 비용 목표(어쩌면 더 가혹한 수치)에 도전하기 위해선 기술력 향상이라는 '정공법'이 특히 더 필요한 셈이다.

이에 기자는 한국보다 기술력에서 몇 발자국은 앞서있다고 평가되는 GTI에 그간의 CCS 기술 연구·개발 히스토리를 물었다.

특히 주목된 점은 GTI가 CCS 연구·개발에 비교적 선제적으로 나설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아크폴랏 박사는 “처음 천연가스 정화부터 시작해 CCS를 연구한지는 10년 정도 된 것 같다"며 “원래 탄소 분리는 천연가스 정화에서 시작됐다. 탄소 포집에 대한 수요가 일어났을 때 우리는 이미 관련 장비를 갖췄기 때문에 천연가스에서 CO2를 제거하는 작업을 시작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세계적인 석유·가스 분야 주요 기업들과의 협력에도 “가스화(gasification)와 천연가스 정화 때부터 이어온 관계가 CCS 연구·개발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기존 과제를 안정적이고 일관적으로 수행해온 덕분에 연관 있는 신기술에 빠르게 진출할 수 있었던 셈이다.

아크폴랏 박사는 “GTI는 CCS에 대한 연구·개발을 지난 10년간 꾸준히 늘려왔다"며 현재는 “전체 연구 중 탄소 관리가 50%, CCS만 추리면 25~30% 정도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GTI 연구·개발을 뒷받침하는 재정적 지원도 상당히 안정적인 구조였다.

아크폴랏 박사는 GTI 후원 주체와 관련해 “대체로 정부 33%, 지방자치단체 33%, 기업 33%로 다 비슷한 비중을 지닌다고 보면 된다"고 밝혔다.

한국에서 특정 분야 연구·개발에 중앙, 지방, 민간이 함께 10여년이상 꾸준히 투자한 사례를 들어본 적 없는 기자에게는 다소 생경한 구조였다.

한국에서 CCS는 산업통상자원부, CCUS(탄소 포집 저장에 활용을 추가한 형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담당하는 등 관련 부처조차 명확하지 않았고, 산업부가 올린 CCS 사업 예산을 과기부가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해 전액 삭감하는 일도 있었다.

물론 GTI라고 해서 재정적 위험에서 완전히 자유롭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크폴랏 박사는 앞선 '10년의 꾸준함'에도 향후 CCS 연구·개발 비중 전망을 묻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확답해줄 수 없다"며 신중론을 취했다.

그는 “앞서 말했듯이 우리는 여러 곳에서 지원을 받아 연구하는 입장"이라며 “가령 갑자기 원자력에 사람들 관심이 쏠리면 CCS가 위축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럼에도, 그를 따라 확인한 CCS 장비들에는 그간의 발자취와 연결된 '다음 단계'가 분명히 엿보였다.

<본 기사는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안효건 기자 hg3to8@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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