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위기가 기업 경영의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폭우·가뭄·폭염·태풍 등 이상기후가 공장과 인프라를 직접 파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공급망과 재무성과까지 흔들고 있다는 점이 속속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강찬수 에너지경제신문 기후환경전문기자는 18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6 기상기후산업 세미나'에서 'ESG와 기후 리스크 대응'이란 제목으로 주제 발표했다. 강 전문기자는 이 자리에서 “기업이 기후리스크를 경영의 핵심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리스크는 크게 이상기후와 해수면 상승 등에 따른 물리적 리스크와 탄소중립 전환 과정에서 나타나는 전환 리스크로 나뉜다.
◇올해 전 세계 기업 기후피해 1812조원 전망
기후리스크가 기업에 미치는 경제적 규모는 막대하다. 지난해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은 올해 글로벌 기업의 자산 손실과 매출 감소를 합친 기후 관련 피해 규모를 1조3000억 달러(약 1812조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가운데 86%가 폭염과 강수량 변화, 장기간 가뭄 등 만성적인 기후위험에서 발생할 것으로 분석됐다. 폭염에 따른 피해만 5980억 달러, 과도한 강수에 따른 피해는 349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대형 태풍이나 홍수처럼 눈에 띄는 재난뿐 아니라 장기간 이어지는 고온과 가뭄이 기업 생산성과 재무성과를 서서히 떨어뜨릴 수 있다는 의미다.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 한파는 기후리스크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대표적인 사례다.한파로 가스정이 멈추면서 천연가스 생산량이 급감했고 발전소도 가동에 차질을 빚었다. 텍사스는 전력망이 주변 지역과 충분히 연결되지 않아 외부에서 전력을 들여오기도 어려웠다. 난방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전력과 연료 공급이 동시에 흔들린 것이다. 그 결과 최소 246명이 사망하고 경제적 피해는 1300억 달러, 약 174조원에 이른 것으로 발표자료는 제시한다.

◇공장 하나 침수돼도 공급망 전체가 흔들린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환경부 '대한민국 기후변화 적응 보고서'에 따르면 2012~2021년 기후변화와 연관된 자연재해로 인한 국내 경제적 손실은 3조7000억원에 이른다. 복구비용까지 고려하면 실제 부담은 이보다 2~3배에 이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2년 태풍 힌남노 당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침수다. 인근 냉천이 범람하면서 포항제철소 생산시설이 대규모로 침수됐고 전 공장 가동이 중단됐다. 피해는 포스코 한 기업에 그치지 않는다. 철강 생산이 멈추면 자동차·조선·기계 등 철강을 사용하는 고객사의 생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공장 한 곳의 침수가 공급망 전체의 생산 차질로 번질 수 있다는 얘기다.
2024년 9월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산단에서는 이틀 동안 530㎜의 폭우가 내리면서 3개 기업의 공장이 침수됐다. 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납품해야 할 제품까지 침수됐다.
강 전문기자는 “기업이 관리해야 할 위험도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공장이 침수될 가능성만 볼 것이 아니라 전력이나 용수가 끊겼을 때, 핵심 협력업체가 피해를 입었을 때, 항만과 도로가 막혔을 때 생산과 납품을 계속할 수 있는지까지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반도체·전자산업은 냉각용수 부족과 정전, 화학약품 공급 차질이 생산을 위협할 수 있고, 자동차는 부품 생산기지 침수로 완성차 출고와 수출이 지연될 수 있다. 데이터센터 역시 폭염과 정전으로 서버 장애와 서비스 중단 위험에 노출된다.
◇탄소규제와 기술변화도 기업 리스크
기후리스크는 자연재해만을 뜻하지 않는다. 탄소중립으로 경제구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전환 리스크도 기업에 상당한 부담이 될 수 있다.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 확대, 환경규제 강화, 친환경 기술의 등장, 소비자 수요 변화 등이 기업의 비용과 시장을 바꿀 수 있다. 철강·시멘트는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등에 따른 수출 경쟁력 변화, 자동차는 내연기관에서 전기차로의 기술 전환에 따른 부품업체 구조조정, 화학·정유업계는 플라스틱 규제와 재활용 기술 확산에 따른 사업구조 변화가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기후변화 대응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탄소규제와 기술변화가 사업모델과 제품 경쟁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미리 계산하는 것도 포함된다.
강 전문기자는 “지금 잘 팔리는 제품과 사업이라도 탄소가격과 규제가 달라지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경쟁구도가 순식간에 바뀔 수 있다"며 “기후리스크를 생산시설뿐 아니라 사업모델과 공급망, 재무성과의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후리스크를 재무 숫자로 관리해야
기후리스크는 기업의 제품 원가는 물론 나아가서 물가에도 영향을 미친다. 폭염·가뭄·집중호우로 농산물 생산과 공급망이 흔들리는 '탄소플레이션(Carbonflation)', 화석연료 가격 상승에 따른 '화석연료플레이션(Fossilflation)', 탄소중립을 위한 인프라 투자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그린플레이션(Greenflation)' 등이 그것이다.
강 전문기자는 “앞으로 기업의 사업성 분석에는 건설비와 인건비, 에너지가격, 시장수요뿐 아니라 기후리스크 비용, 생산중단 비용, 공급망 차질 비용, 보험비용, 기후적응 투자비용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는 지적했다.
이처럼 기후리스크가 기업의 명운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만큼 기업 경영자도 더는 기후리스크 관리를 환경 부서에만 맡겨서는 안 된다.
기후 관련 재무 정보 공개 협의체(Task Force on Climat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CFD)가 제시한 것처럼 기후변화가 사업전략과 운영, 재무성과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해 경영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지구 평균기온 1.5℃, 2℃, 4℃ 상승 등 서로 다른 기후 시나리오에서 사업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따져야 한다. 탄소가격 상승이 생산비에 미치는 영향, 폭염에 따른 전력수요 증가, 가뭄에 따른 용수 부족, 극한홍수에 따른 공장 침수 가능성 등을 매출·영업이익·자산가치 변화로 연결해 보는 방식이다.
강 전문기자는 “대규모 반도체 공장이나 데이터센터처럼 전력과 용수 의존도가 높은 시설은 홍수와 가뭄을 별개의 위험으로 볼 것이 아니라 복합재난을 가정한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