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인사이트] 독일도 인정 “탈원전은 잘못된 선택”…한국은 왜 정책 평가 없나

독일 총리 “탈원전 잘못된 결정”, EU 집행위원장도 “원자력 외면은 전략적 실수”
유럽 원전 확대 움직임…한국은 ‘실용주의’로 넘어갈 뿐 과거 정책 책임 논의 실종
탈원전 정책에 대한 체계적인 평가·정치적 책임 논의 이뤄져야
2026.03.12 11:32:46 댓글 0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 사진=연합외신


독일 등 유럽 정치권에서 탈원전 정책에 대한 공개적인 반성이 나오면서 한국도 정책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10일(현지시간)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독일의 탈원전 결정은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라며 정책을 되돌리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같은 날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민간원자력 정상회의에서 “유럽이 원자력을 외면한 것은 전략적 실수였다"고 평가했다.


탈원전을 추진했던 유럽 정치권에서 정책 판단의 오류를 인정하는 발언이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독일은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탈원전을 선언했다. 이후 12년 동안 단계적으로 원전을 폐쇄했고, 2023년 4월 마지막 원전 3기가 가동을 중단했다.


그러나 탈원전 이후 독일은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다. 풍력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중은 빠르게 늘었지만 발전량이 날씨에 따라 크게 변동하는 문제가 나타났고, 이를 보완하기 위해 가스발전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졌다.


탈원전 정책 이후 나타난 문제

탈원전 정책 이후 나타난 문제

특히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독일의 에너지 정책은 큰 압박을 받았다. 결국 독일 정부는 최근 가스발전소 신규 건설과 전력망 확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재생에너지 확대와 에너지 안보 사이에서 정책 딜레마가 발생한 것이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에서는 원자력의 역할을 다시 평가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탈원전을 추진했던 국가들조차 정책 방향을 수정하거나 원전 확대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


유럽 에너지 정책의 흐름은 점차 '재생에너지 + 원전 병행' 구조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기저전원 역할을 할 수 있는 원전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주요국 원전 정책 변화

유럽 주요국 원전 정책 변화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이재명 정부, 성찰 없이 실용주의로 전환


한국도 과거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탄소중립을 표방하면서도 탈원전 정책을 시행해 신규 원전 건설 계획 중단, 노후 원전 조기 폐쇄 또는 가동 중단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이 과정에서 원전 산업 생태계 축소와 기술 인력 유출 우려가 제기됐다. 특히 원전 기자재 기업들은 신규 프로젝트 감소로 경영 어려움을 겪었다. 대표적으로 두산에너빌리티는 한때 원전 사업 축소로 대규모 구조조정 위기를 겪기도 했다.


특히 원전 발전량이 줄면서, 오히려 화석연료인 LNG 발전량이 늘어나는 아이러니도 발생했다. 원전 발전량은 2016년 15만4310GWh에서 2017년 14만1278GWh, 2018년 12만7078GWh로 줄은 반면, 같은 기간 LNG 발전량은 11만1814GWh에서 11만7637GWh, 14만4067GWh로 증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로 국제 정세 변화에도 더욱 취약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에서는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하며 에너지 공급 위기가 현실화됐다. 최근 중동 지역 긴장과 이란 사태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확대될 때마다 화석연료 수급 불안과 가격 변동성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전문가들은 안정적인 기저전원을 축소하고 변동성이 큰 재생에너지를 늘리면서 동시에 가스발전 의존도를 높이는 구조는 이런 지정학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한 전력 생산 구조 변화로 전력시장 가격 변동성이 확대되고 전력구입비 부담이 증가하는 문제도 나타났다. 여기에 신규 원전 건설 중단과 조기 폐쇄 정책 등으로 원전 산업 생태계가 위축되고 관련 기업과 인력의 어려움이 커졌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정권 교체 때마다 에너지 정책 방향이 크게 바뀌면서 산업계의 정책 예측 가능성과 투자 안정성이 흔들렸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2022년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다시 원전 확대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2025년 들어선 이재명 정부도 '실용주의'를 내세우며 신규 원전 건설과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해외 원전 수출을 국가 핵심 산업 전략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만 이 정부는 문 정부와 같은 정당이면서도 탈원전 정책이 잘못됐다는 반성과 성찰은 아직 내놓지 않고 있다.


에너지 정책은 수십 년을 내다보고 추진해야 하는 국가 전략 산업이다. 발전소 하나를 건설하는 데만도 최소 10년 이상이 걸리고, 산업 생태계 역시 장기간의 안정적인 정책 환경 속에서 유지된다. 한국도 유럽처럼 과거 탈원전 정책에 대한 정책 평가나 정치적 책임 논의가 이뤄져야 향후 올바른 정책이 세워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조홍종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럽 정치권에서는 최소한 정책 판단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던 정치권에서 정책 평가나 반성 논의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며 “에너지 정책은 정권의 정치적 선택이 아니라 국가의 장기 전략이어야 한다. 정책 실패보다 더 위험한 것은 실패를 평가하지 않는 정책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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