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살려 낸 ‘소나무숲·개구리’, 자산이 된다

기후부 자연환경보전법 개정 시행령 19일 시행
자연복원사업을 민간·기업 참여 중심으로 전환
‘자연자본’ 중요성 강조하는 국제 흐름 반영해
공시제도와 생물다양성 크레딧으로 발전 가능성
2026.03.11 13:28:37 댓글 0
'생태계 보물창고'로 불리는 제주도 하논분화구. 제주도는 올해부터 2033년까지 8년간 198억원을 투입해 하논분화구 핵심구역 내 사유지 527필지 21㏊를 매입할 계획이라고 지난 5일 밝혔다. 사진=강찬수 기자


정부가 자연환경 복원 정책의 구조를 크게 바꾸는 내용으로 자연환경보전법 시행령을 개정함에 따라 향후 국내 생물다양성 정책과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 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정부 주도의 자연 복원사업을 민간 자본과 기업 참여 중심으로 전환하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국제적으로 확산하고 있는 '자연자본' 개념과 자연 관련 공시 체계와도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0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자연환경 복원 사업에 민간 기업과 단체의 참여를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자연환경보전법 시행령 개정안이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돼 오는 19일 시행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개정안의 핵심은 훼손된 국토를 복원하는 과정에 기업의 기부나 자산 대여 등 다양한 방식의 참여를 허용하고, 그 성과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해 기업의 ESG 경영 성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번 제도 개편은 단순한 환경 정책의 조정을 넘어 자연 자본 관리 체계를 바꾸는 시도로 평가된다. 기업의 환경 복원 활동을 제도적으로 인증하고, 이를 생물다양성 증진과 지역경제 활성화까지 연결하는 정책 구조가 처음으로 마련되기 때문이다.



◇정부 중심 복원에서 '민관 협력 모델'로 전환


자연자본(natural capital)은 숲·토양·하천·해양·생물다양성 등 자연 생태계가 인간 사회와 경제 활동에 제공하는 자산과 그 가치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연 시스템은 식량 생산과 물 공급, 탄소 흡수, 기후 조절 등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며 경제의 기반이 된다.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자연을 단순한 환경 요소가 아니라 경제 활동의 기반이 되는 '자연자본'으로 인식하는 흐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안도 이런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시행령 개정안에 따르면 기업이나 단체가 자연환경 복원사업에 참여하는 방식은 크게 기부와 자산 대여로 나뉜다. 민간이 참여 의사를 밝히면 전문기관이 참여 컨설팅과 사업 협의를 진행하고, 이후 실제 복원사업이 시행된다. 사업이 완료되면 정부가 복원 성과를 평가해 '실적 인정 서류'를 발급한다.


이 서류에는 탄소 흡수량, 생물다양성 증진 기여도, 오염물질 저감 효과 등 복원사업의 환경 성과가 정량적으로 담기게 된다. 기업은 이를 ESG 경영 성과를 입증하는 공식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이러한 실적 인정 체계는 자연자본 기반 공시 체계와 연결된다. 최근에는 자연 훼손이 기업의 생산 활동과 공급망 안정성, 재무 안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자연자본 관리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의 자연 의존도와 영향도를 평가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자연자본 공시는 기업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의존도를 공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다. 자연자본 공시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어가는 추세에서 자연 복원 활동을 통해 창출된 긍정적 효과를 데이터로 제시하는 것이 중요해지고 있다.


일본 이리오모테 섬의 맹그로브 숲. 맹그로브 숲은 퇴적물 축적, 해안 보호, 어류 산란장 및 치어 서식지 제공 등 유익한 기능을 수행하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연안 어업 공동체를 지원하는 데 기여할 수 있어 자연자본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사진=위키피디아)


◇자연자본 관리와 TNFD 공시 대응


특히 이런 흐름 속에서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의존도를 공개하도록 권고하는 국제 협의체인 '자연 관련 재무정보 공개 협의체 (Taskforce on Nature-related Financial Disclosures, TNFD)'도 등장했다. TNFD는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과 의존성, 위험과 기회를 공개하도록 권고하는 국제적 프레임워크로, 기후 분야의 TCFD와 유사한 역할을 한다.


TNFD는 지난 2023년에 기업의 관련 정보 공개와 관련해 첫 가이드라인을 내놓았다. TNFD 가이드라인에서는 기업이 자연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뿐 아니라 자연 복원과 보전을 통해 창출한 긍정적 영향도 공시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발급되는 '실적 인정 서류'는 이러한 공시에서 중요한 데이터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이 자연환경 복원사업을 통해 확보한 탄소 흡수량이나 생물다양성 개선 효과는 TNFD 보고서에서 자연에 대한 긍정적 영향 지표로 제시될 수 있다. 정부가 발급한 공식 실적 자료라는 점에서 공시의 신뢰도를 높이는 역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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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TNFD)


◇생물다양성 크레딧 시장의 제도적 기반 마련 가능성


이번 시행령 개정으로 주목받는 또 하나의 변화는 자연환경복원지원센터의 신설이다. 이 센터는 기업이 참여하는 복원사업에 대해 컨설팅과 기술 지원을 담당하고, 사업 결과를 평가해 실적을 인정·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공식적으로 '생물다양성 크레딧' 제도를 도입한다는 표현은 없지만, 정책 구조를 보면 향후 관련 시장 형성을 위한 기초 인프라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생물다양성 크레딧은 자연 복원이나 보전 활동의 성과를 수치화해 인증하거나 거래하는 개념으로, 탄소배출권과 유사한 시장 메커니즘을 갖는다. 이번 개정안에서 도입되는 '복원 실적 인정' 체계는 사실상 이러한 크레딧 제도의 핵심 요소인 성과 측정과 인증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복원사업을 통해 확보된 탄소흡수량이나 생물다양성 개선 효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정부가 인증하는 구조는 향후 생물다양성 크레딧을 발행하거나 거래하는 제도가 도입될 경우 핵심 기반이 될 수 있다.


환경 정책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가 “생물다양성 금융 시장으로 이어질 수 있는 초기 행정 틀을 마련한 것"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생물다양성 크레딧 운영 개념도. (자료=E. Croci, 등 Journal of Cleaner Production, 2025)


◇자연환경 복원 산업 시장 확대 전망


제도 개편은 자연환경 복원 산업 자체의 성장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정부는 기존의 자연환경보전사업 대행자 제도를 등록제로 전환해 사업 수행 업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기로 했다. 동시에 진입 장벽도 일부 낮췄다. 대행업체의 자본금 기준을 법인은 7억 원에서 5억 원으로, 개인은 14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완화해 더 많은 전문업체가 시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따라 생태 복원 설계, 습지 복원, 산림 복원, 생태 모니터링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기업이 자연환경 복원 시장에 새롭게 진입할 가능성이 커졌다.


특히 개발사업자가 납부하는 생태계보전부담금 반환사업과 복원사업이 연계되면서 복원 프로젝트의 재원도 확대될 전망이다. 개발사업자가 복원사업을 시행하면 부담금의 일부를 돌려받을 수 있어 민간 복원사업의 경제적 유인이 강화된다.


개정안에는 자연환경 복원과 연계한 생태관광 활성화 정책도 포함됐다. 정부는 생태관광 상품과 시설에 대해 '우수 생태관광 인증제'를 도입하고, 관광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시스템도 구축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자연환경 복원 지역을 관광 자원으로 활용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복원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지역이 생태관광 명소로 발전하면 기업은 환경 복원 성과뿐 아니라 지역사회 기여라는 사회적 가치도 함께 창출할 수 있다. 이는 ESG 경영에서 중요한 '사회(S)' 요소와도 연결된다.



◇ESG·자연자본 경영으로 이어질 정책 실험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시행령 개정은 자연환경 복원을 단순한 환경 보호 정책이 아니라 자연자본 관리와 기업 경영을 연결하는 정책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자연환경 복원 사업에 참여함으로써 탄소 흡수, 생물다양성 보전, 지역사회 공헌이라는 세 가지 성과를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정부는 이러한 활동을 공식적으로 인증해 기업 가치와 연결시키겠다는 전략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제도가 한국에서도 자연자본 관리 정책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향후 기업 공시 체계가 TNFD 기준으로 확대되고 생물다양성 금융 시장이 형성될 경우, 자연환경 복원 사업은 단순한 환경 활동이 아니라 기업 전략과 투자 판단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결국 이번 제도 개편은 자연을 보호하는 정책을 넘어, 자연을 경제 시스템 속에서 관리하는 '자연자본 시대'에 대비한 정책 실험으로 평가된다. 향후 실제 복원 프로젝트의 규모와 기업 참여 정도에 따라 한국에서도 자연자본 기반 ESG 시장이 형성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채은 기후에너지환경부 자연보전국장은 “이번 자연환경보전법 시행령 개정으로 자연환경복원이 정부 주도에서 민간의 창의성과 자본이 결합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것"이라며 “우수한 생태관광 상품의 확산을 통해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국가 생물다양성을 높이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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