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력 소비자인 기업이 한전을 거치지 않고 전력거래소로부터 직접 전력을 공급받는 전력직접거래에 관한 승인이 늦어지고 있는 가운데, 소관 부처인 산업부는 한 달 가량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료비연동제 미납분 등 관련 규정을 세밀하게 보강하는 차원이다.
5일 전력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기위원회에서 심의되는 석유화학기업 SK어드밴스드의 전력직접거래 승인 요청 건이 1월에 이어 2월에도 무산됐다. SK어드밴스드는 업황 악화로 비용 절감을 위해 전기요금을 낮추고자 산업부에 전력직접구매 승인을 요청했다.
전력직접거래는 전기사업법 제32조에 명시돼 있는 전력 소비자의 권한 사항이다. 하지만 산업부는 첫 전력직접거래가 승인될 경우 다른 기업들의 줄신청이 나올 수 있고, 이로 인해 한전의 부실 재무상태가 더욱 악화될 수 있어 관련 규정을 더욱 정교하게 짜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업부는 최대한 제도를 보완해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필요한 시간은 약 한달로 잡고 있다.
산업부 한 관계자는 “기업들이 관심이 많은 사안임을 인지하고 있다. 전력시장 전반에 영향을 미칠 중요한 제도인 만큼 신중하게 정비를 해야할 필요가 있다"며 “추가적으로 한 달 정도 시간을 갖고 재검토해서 전반적으로 신중하게, 확실하게 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합리적인 제도 정착을 위해 기업들과 계속 소통을 하고 있다. 정부가 마음대로 바꾸고 따르라고 할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지금 가지고 있는 규정 개정안도 업계의 동의가 된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규정을 보완하는 부분에는 한전의 피해에 대한 보상 부분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들이 그동안 저렴한 전기요금을 이용하다 요금이 인상되니 바로 이탈하는 것은 일종의 '체리피킹'이 될 수 있는 만큼 이같은 문제를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전력산업 전문가는 “소위 말하는 체리피킹 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안된다. 기업들이 전력직접구매를 하려면 최근 수년간 연료비연동제 미적용 분에 따른 이익을 한전에 반납하는 등의 조항도 마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다만 있는 제도를 활용하겠다는 업계의 요구도 합당한 만큼 여러 가지 방향에서 나오는 지적과 우려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균형 있는 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규정 보완에는 전력직접거래 줄신청에 따른 한전을 보호하는 내용이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전력업계 한 관계자는 “첫 전력직접거래가 승인되면 여러 기업들이 줄신청을 할 수 있어 한국전력은 수많은 대기업 고객들을 잃게 될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더욱 심해질 수 있다. 전력시장 전체를 책임지고 있는 산업부 입장에서 쉽사리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SK어드밴스드가 신청해서 직접구매와 관련된 규칙이 개정됐지만 개별 기업의 안건이 아니라 전력시장 전체에 해당하는 사안이다. 시장 운영 규칙을 개정하면 전기위원회의 승인을 받도록 돼있다. 그래서 안건 신청의 주체가 전력거래소와 산업부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석유화학을 비롯한 제조 기업들은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을 우려하며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기요금의 한시적 인하 등 특단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4일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제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42%가 전기요금 인상으로 인해 새로운 전력 조달 방식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직접거래 신청도 그 일환이다.
전력당국 입장에선 한전이 수년간 원가 이하 전력판매로 재무상태가 매우 어렵게 되자 최근 연이어 전기요금을 인상한 것인데, 산업용 고객사들이 대거 빠져나가면 한전이 다시 재무악화에 빠지고 그렇게 되면 전기요금 인상요인이 다시 커지게 된는 만큼 딜레마에 빠진 상황이다.
전지성 기자 jjs@ek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