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내몰린 석유화학업계 “전력직접거래 안되면 가동 중단 검토”

중동·중국 저가 공세에 속수무책…수년째 적자에 비용절감 안간힘
한전, 산업용 전기요금만 연속 인상…전력거래소로부터 직접 구매 신청
산업부 고심…한 곳 허용하면 다른 곳도 신청, 안 해주면 정당신청 거부꼴
2024.12.18 14:40 댓글 0
▲울산 석유화학 단지 전경


석유화학업계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가운데 2년 연속 산업용 전기요금만 오르자 내년에 공장 가동을 중단하는 기업들이 속출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최근 일부 석화 기업들은 내년부터 한국전력으로부터 산업용 전기요금을 구매하는 대신 전력시장에서 직접 전력을 구매하는 방안을 요청한 바 있다. 전력거래소와 산업통상자원부는 해당 요청을 심의 중이다.

18일 울산 소재의 한 석유화학 업체 관계자는 “석화 업계는 단순히 전기요금 문제 넘어 이미 중동, 중국 등의 저가 공세에 이미 수년째 적자를 보고 있다"며 “전력직접거래를 신청한 것은 어떻게든 비용을 줄여 공장을 운영해 보려고 한 것이다. 만약 불발된다면 손실을 막기 위해 한동안 공장 가동을 멈추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력직접거래는 전기사업법에 의거 일정 설비 기준을 만족한 전기사용자는 한전을 거치지 않고 직접 전력거래소로부터 전력을 구매할 수 있는 제도를 말한다.

설비 기준을 만족하는 이 업체는 한전이 2년여 동안 연속으로 산업용 전기요금만 인상함에 따라 전력거래소로부터 직접 구매하기 위해 전력직접거래를 신청한 상태다.

이 업체가 전력직접거래를 신청한 이유는 그만큼 불황이 매우 심각하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매출액이 2021년 거의 9000억원에서 2023년 6000억원으로 줄었고, 올해 반기 매출도 26%가량 감소했다.

문제는 이 업체뿐만 아니라 국내 석유화학 산업 전체가 심각한 부진에 빠졌다는 것이다. 석유화학은 제조업 중심인 한국 경제를 지탱해온 대표적인 기초 소재산업이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중국과 중동발 설비 증설로 인한 저가물량 공급 과잉과 글로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부진이 맞물려 불황이 길어지고 있다.

국내 업계는 이에 맞서 어떻게 해서든 비용 절감을 해야하는 상황으로 내몰리는 모양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도 내수 침체가 길어지다 보니 해외로 물량을 덤핑 식으로 밀어내고 있다"며 “원가 경쟁력이 강한 중국이 제품을 대량 생산해 시장에 풀어놓으니 한국 기업이 밀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4대 석유화학 기업으로 꼽히는 LG화학과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3개 기업은 올해 3분기 일제히 영업적자를 냈고, 그나마 흑자를 낸 금호석유화학은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익이 22.7% 급감했다.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금액)는 2022년 이후 손익분기점인 t당 300달러를 밑돌고 있다. 올해 3분기 에틸렌 스프레드는 t당 186.47달러에 불과했다. 팔면 팔수록 손해가 나는 실정인 것이다.

한편 중국은 2014년 1950만t 수준이던 에틸렌 설비 능력을 지난해 5180만t 수준으로 급격히 끌어올렸다. 한국(1270만t)과의 차이는 4배 이상이다.

과거에는 국내 기업이 수출한 석유화학 제품을 중국이 재가공하는 구조였으나, 이제는 중국이 100% 자급력을 갖추면서 국내 기업의 수출 물량이 현저히 감소했다. 여기에 중국 내수 부진으로 중국의 물량이 해외로 쏟아지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제품 가격이 전체적으로 하향된 것이다.

이미 석유화학 업체가 밀집한 여수산단에서는 하나둘씩 공장들이 가동을 멈추고 있다.

지난달부터 불거진 롯데그룹 위기설의 배경도 그룹의 캐시카우(수익 창출원)로 꼽히던 롯데케미칼의 위기 때문이다. 롯데케미칼은 3년 전만해도 1조5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며 캐시카우 역할을 했지만, 이후 업황이 악화되면서 생존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몰렸다.

업계예서는 정부가 석유화학 업체에 전력직접구매 혹은 자가발전을 허용하는 등 비용절감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아울러 업계가 밀집한 전남 여수시를 '산업위기 선제 대응 지역'으로 지정하고 관계부처 합동으로 업계에 대한 금융, 세제 등 지원방안도 요청하고 있다.

석유화학 및 전력산업을 총괄하고 있는 산업통상자원부는 전력직접거래 신청을 쉽사리 허가하기 힘든 상황이다.

한 업체를 허가해주면 다른 기준을 충족한 업체들의 신청까지 모두 허가해줘야 한다. 반대로 이를 허가해주지 않으면 법에 나와 있는 정당한 신청을 정부가 거부하는 꼴이기 때문에 법적문제로 비화될 수 있다.

산업부 측은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 중에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전지성 기자 jjs@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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