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우 칼럼] 미필적 고의와 기후위기

2024.10.27 10:30 댓글 0
▲김성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환경에너지연구소장/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위원


'미필적 고의(未必的 故意)'라는 법률 용어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이를 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 상태로 정의하고, 통행인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골목길을 차로 질주하는 경우로 예시하고 있다. 대법원도 “살인의 범의는 반드시 살해의 목적이나 계획적인 살해의 의도가 있어야 인정되는 것은 아니고,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타인의 사망의 결과를 발생시킬 만한 가능성 또는 위험이 있음을 인식하거나 예견하면 족한 것이고 그 인식이나 예견은 확정적인 것은 물론 불확정적인 것이라도 이른바 미필적 고의로 인정되는 것"이라고 판시해, 가해 의도가 없더라도 불확정적 위험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경우를 미필적 고의로 인정한 바 있다.

환경에너지 전문가인 필자가 뜬금없이 미필적 고의를 언급하는 이유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현재 세대의 심리상태가 미필적 고의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의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 중 기후변화만큼 장기적으로 위험한 것이 없다는 점을 현재 세대가 어느정도 인식하거나 예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 배출 감축이나 신재생에너지 증가는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미필적 고의라는 용어를 접할 때 마다 찜찜했었다. 이렇게 혼자 삼켜 오던 찜찜함이, 지난 8월 29일 기후위기가 미래 세대의 권리는 침해한다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으로 모두에게 확인되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2020년 3월 이후로 청소년 환경단체의 회원들, 5세 이하 영유아 등 200명 이상의 청구인이 순차로 제기한 헌법소원 사건'에서, 헌법재판소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법'(이하 '탄소중립기본법') 일부 조항이 헌법에 합치되지 아니한다는 결정을 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을 위하여 국가가 법령 등으로 설정한 정책이 불충분하여 헌법이 보장하는 환경권과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다툰 헌법소원에 대한 결정이 선고된 것이다.

특히 전원일치로 헌법불일치 결정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 제1항의 경우,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18년 배출량 대비 35% 이상의 범위에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비율만큼 감축"하는 것을 중장기 국가 목표로 하면서 2031년 이후의 감축 목표에 대해서는 규정하지 않은 조항이, 과소보호금지원칙, 법률유보원칙을 위반하여 환경권을 침해하는지 여부가 쟁점이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2031년부터 2049년까지 19년간의 감축목표에 관하여 그 정량적 수준을 어떤 형태로도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은, 2050년 탄소중립의 목표 시점까지 감축을 담보할 장치가 없어 미래에 과중한 부담을 이전하는 것이므로 청구인들의 환경권을 침해한 것으로 판단해 헌법불합치결정을 선고했다.

이번 결정에 따라 정부는 2031년 이후의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수립해 2026년 2월 28일을 시한으로 법령에 반영해야 한다. 또한 향후 정부가 2031년 이후까지 포함하는 기후 대응 관련 정책 수립시 미래 세대에 대한 과중한 부담 이전을 하지 않도록 강조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고려해야 한다. 파리협정에 의해 내년 중에 UN에 제출할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설정을 예로 들 수 있다. 추가로 이번 결정을 계기로 환경단체 등 사회내 이해관계자의 기후 대응 요구가 강화되고 추가 소송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지난 8월 동아시아연구원과 중앙일보가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위협 요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1.2%가 “기후 변화와 환경 문제"라고 답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라는 응답(51.1%)과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북핵과 유사한 수준의 위협으로 인지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통행인을 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골목길을 차로 질주하는 미필적 고의와 다를 바가 없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미필적 고의에 대한 경고로도 읽히는 이유다.


김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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