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사이트] 대구 전쟁으로 본 해양분쟁 해법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U연구소장
2024-02-06 13:03:09 댓글 0
▲김봉철 한국외국어대학교 국제학부 교수/ EU연구소장


국민생선 대구(cod)는 맛이 좋고 영양가가 높아서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다. 한국에서는 입이 크다는 의미에서 대구(大口)라고 불리는 이 생선은, 사실 세계적으로 어획량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는 수산물로 갈 수록 귀한 몸 대접을 받는다.

이런 가운데 한-미 통상문제는 물론이고 아이슬란드, 영국, 러시아, 노르웨이, 뉴질랜드 등과 긴급수입제한조치(Safeguard) 관련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반을 사유로 국가간 분쟁을 낳기도 했다. 아이슬란드 연근해와 북극해에서는 여전히 대구 어획량이 풍부한 편이어서 아이슬란드와 영국 사이에 수산자원의 확보에 관한 '대구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 전쟁은 국지전에 불과한 소규모 전쟁이었지만, 포격전도 있었고 사상자도 발생했으며 국제사회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오랫동안 영국 어부들이 아이슬란드 영해에서 대구를 남획하며 양국 어부들 사이에 갈등이 발생했다. 제2차 세계 대전으로 영국 어선들이 해군으로 징발되면서 이러한 모습이 잠시 사라지기도 했지만 전쟁이 끝나자마자 대구 어획을 목적으로 하는 영국 어선들은 다시 아이슬란드 영해에 나타났다. 아이슬란드 정부는 자국의 경제가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자국의 영해 범위를 지정하여 강력히 대응했고, 아이슬란드의 일방적인 조치에 영국 정부는 자국 어민들의 불만을 해결하고자 반발하며 전쟁에 이르게 됐다. 영국은 세계 대전 이전까지 세계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강대국이었고 아이슬란드는 덴마크 자치령에서 겨우 독립한 작은 국가에 불과했으므로 당시 아이슬란드의 대응이 무모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이 전쟁은 시기에 따라서 제1차(1958-1961), 제2차(1972-1973) 그리고 제3차(1975-1976) 전쟁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시기별로 구체적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그러나 아이슬란드 정부의 강경책과 영국 해군의 물리적 대응, 포격전과 외교적 협상 등이 이루어지는 모습들은 대체로 비슷했다. 그러한 과정에는 유럽경제의 변화, 냉전 시기의 국제안보, 중동전쟁으로 인한 오일쇼크 등 국제사회의 큰 사건과 배경이 도사리고 있었는데, 아이슬란드는 이러한 국제정세를 활용해 유리한 상황을 만들었다.

아이슬란드는 영국에 대한 전면전을 선언하며 미국에 무기 구매를 의뢰했고,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당시 소련 호위함을 구매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만약 아이슬란드가 소련 무기를 구매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서 탈퇴한다면, 이것은 아이슬란드에 주둔한 미국 해군이 철수하고 이 자리를 소련이 대체하면서 북해와 북극해를 장악할 수도 있다는 의미였다. 당시 미국과 유럽공동체는 이러한 상황을 우려하며 이른바 '200해리에 관한 해양수역법'을 통과시키는 등 아이슬란드를 끌어안고자 노력했고, 양국 사이의 분쟁은 NATO의 중재로 아이슬란드의 협상안이 관철되면서 종결되었다.

약소국 아이슬란드는 국민적 이해와 국제관계를 활용해 강대국인 영국을 상대로 승리한 셈이다. 양국은 원래 NATO라는 안보공동체에 속해있었고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자국민의 어업권 확보라는 당면한 이해관계에는 첨예하게 대립했다.

대구전쟁의 경과와 그 결과를 보면, 국익은 국가의 존립 기반이자 존재 이유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해양 거버넌스와 해양 자원의 확보를 위한 영해권 관할 문제는 동맹국 사이에도 갈등을 초래할 가능성으로 연결되며, 어업권 수호는 해양 국가가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할 핵심 사안이다. 그 형태와 양상은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대구전쟁이 오늘날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할 때, 약소국이라도 영해권 또는 어업권 분쟁에 성공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점을 추론할 수 있다.

이 전쟁에서 아이슬란드의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그 내용이 이후 제정된 UN해양법협약(united nations convention on the law of the sea, UNCLOS)에서도 '배타적경제수역'(EEZ)이라는 개념으로 명시되었다. 이 규정으로 이제 자국 연안으로부터 200해리까지의 수역에 천연자원 탐사와 개발 및 보존, 그리고 해양환경의 보존과 과학적 조사 등 모든 주권적 권리가 국제사회 전반에서 합법적으로 보호될 수 있다. 그리고 현재 국제적으로 해상 영해권에 관한 분쟁은 국제법에 따라 해결할 수 있도록 해결의 통로를 열어두고 있는데, 실례로 국제사법재판소(ICJ)의 판정을 들 수 있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해양 분쟁에 대해 과거보다는 성숙한 기준과 분쟁의 해결 방법을 확보하고 있다. 다만 ICJ의 판정을 통한 분쟁의 처리는 당사국이 이 방법에 합의해야 성립한다는 조건이 필요한 것처럼, 여전히 보완해야 할 과제도 많다. 해양강국인 우리나라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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