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간 전력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지역별 전력도매가격제(LMP)가 송전혼잡으로 한국전력의 구입비가 줄어드는 '도덕적 해이'를 유발하고, 기존 발전사에 비용 부담을 전가해 정책 신뢰와 전력공급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번 기획에서는 송전망 확충 책임과 비용 부담의 불균형, 발전사의 경영·투자 위축이 전력수급에 미칠 영향을 짚고 신중한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보완책을 살펴본다. [편집자주]
정부가 기업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추진하는 지역별 전기요금제가 재생에너지를 비롯한 신규 발전사업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비수도권 전력도매가격이 낮아지면 기존 발전사의 수익성이 악화되는 데 그치지 않고 신규 사업자의 예상 수익률까지 떨어뜨려 투자 자체를 주저하게 만들 수 있어서다.
20일 NICE신용평가가 지난달 발간한 'AI 시대 한국 전력시장 주요 이슈와 발전사 신용도 전망'에 따르면 지역별한계가격제(LMP) 도입은 화력발전뿐 아니라 비수도권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됐다. NICE신용평가는 “신재생에너지사업은 전력시장을 통한 판매물량에는 가격 하락이 직접 반영돼 부정적"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고정가격입찰시장과 직접전력구매계약(PPA) 등 가격 하락 위험을 완화할 수 있는 수단이 있어 영향은 상대적으로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발전원별로는 LMP 도입에 따른 부정적 영향이 비수도권 LNG발전소, 동해안 석탄발전소, 비수도권 신재생에너지설비 순으로 클 것으로 예상했다.
이처럼 지역별 전력도매가격 차등에 따른 영향은 기존 대형 발전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발전사업은 향후 전력 판매가격과 예상 발전량 등을 토대로 사업성을 판단하고 자금을 조달한다. 비수도권 전력도매가격이 수도권보다 구조적으로 낮아질 경우 해당 지역에서 신규 발전사업을 추진하는 사업자의 예상 수익도 함께 낮아질 수밖에 없다. 가격제도의 불확실성까지 더해지면 금융조달 비용 상승이나 투자 결정 지연, 사업 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는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과도 엇박자를 낼 수 있다. 정부는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사업용 재생에너지 설비를 지난해 37기가와트(GW)에서 2040년 220GW까지 약 6배 확대하고, 자가용 태양광 16GW를 포함해 전체 재생에너지 설비를 236GW 수준까지 늘리는 전망을 제시했다. 태양광과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설비 상당수는 수도권 밖에 들어설 수밖에 있다. 정부가 비수도권 발전사의 판매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지역별 요금제를 설계할 경우 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요한 지역에서 오히려 신규 발전설비의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들은 이미 송전망 부족에 따른 가동중단(출력제어) 부담을 안고 있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호남지역 출력제어 횟수는 2024년 26회에서 지난해 상반기 44회로 증가했다. 전력 생산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계통 문제로 발전량을 줄여야 하는데, 지역별 가격제 도입으로 전력 판매단가까지 떨어질 경우 발전량과 가격이 동시에 수익성을 압박하는 구조가 될 수 있다.
문제는 향후 전력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돼 신규 발전설비 투자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재전망 공개토론회에서 제시된 2040년 최대전력 목표수요는 158.4~165.0GW다. 2025년 약 100GW와 비교하면 1.6배 수준이다.
여기에 석탄발전의 단계적 폐지까지 예정돼 있다. 재생에너지가 빠르게 늘어나더라도 날씨와 시간대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지는 간헐성이 있어 액화천연가스(LNG) 등 보완전원도 필요하다. 재생에너지와 LNG를 비롯한 신규 발전설비의 투자 유인이 동시에 약화될 경우 최대전력 수요가 발생하거나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줄어드는 시간대에 필요한 공급능력을 제때 확보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지역별 전기요금제의 당초 정책 목표와 충돌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정부는 발전량이 많은 비수도권의 전기요금을 낮춰 전력 다소비 기업의 지방 이전과 투자를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를 확대해 송전망 부담을 낮추겠다는 분산에너지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하지만 기업 이전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이를 뒷받침해야 할 발전설비 투자가 위축되면 정책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 기업을 전력 생산지역으로 유치하면서 정작 해당 지역에 새로운 발전소를 지을 유인은 떨어뜨리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에서는 소비자의 전기요금을 낮추는 소매요금 할인과 발전사의 판매가격을 조정하는 도매요금 차등을 분리해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수도권 소매요금 할인은 우선 추진하되 전력산업기반기금이나 정부 재정지원 등 별도 재원을 활용하고, 도매가격 차등은 신규 발전투자와 전력수급에 미치는 영향을 충분히 검증한 뒤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지역별 요금제가 기존 발전사의 수익성에 미치는 영향뿐 아니라 앞으로 비수도권에 들어설 재생에너지와 신규 발전설비의 사업성까지 함께 봐야 한다"며 “전력수요는 계속 늘어나는데 투자에 필요한 가격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면 발전설비를 적기에 확보하는 데 어려움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