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전지성 기자] “가스공급을 멈추지 않고도 내부를 검사할 수 있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건강검진용 내시경이죠."
한국가스공사 인천 가스연구원. 연구동 한편에 놓인 거대한 원통형 장비 앞에서 연구진은 '인텔리전트 피그(Intelligent Pig)'를 이렇게 설명했다.
피그는 천연가스가 흐르는 배관 내부를 따라 이동하며 부식, 균열, 찌그러짐 등 이상 여부를 탐지하는 검사로봇이다. 천연가스 공급을 중단하지 않은 채 수십~수백 km를 주행하면서 배관 상태를 진단할 수 있어 '배관 속 내시경'으로 불린다.
현재 가스공사가 운영하는 천연가스 주배관은 전국에 걸쳐 5346㎞에 달한다. 이 가운데 약 73%는 피그를 활용한 인라인 검사(ILI·In-Line Inspection)가 가능하다. 연구진은 “배관 건전성을 확인하는 다양한 기술이 있지만 배관 내부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기술이 인텔리전트 피그"라고 설명했다.
해외 기술 의존에서 독자 기술 확보까지
가스공사가 처음부터 피그 기술을 보유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국내 배관 검사는 해외 전문업체에 의존했다. 하지만 배관 안전관리 중요성이 커지고 검사 수요가 늘어나면서 자체 기술 확보에 나섰다.
가스공사는 2000년 인텔리전트 피그 개발에 착수해 2008년 상용화를 완료했고, 2009년부터 실제 배관 검사에 투입했다. 이후 20·24·26·30·36인치급 장비 라인업을 구축하며 현재까지 총 109개 구간, 6021㎞에 대한 검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약 556억원 규모의 수입대체 효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연구진은 “고압배관 검사 기술 개발에만 약 116억원이 투입됐지만 현재는 해외 발주 없이 자체 기술로 대부분의 배관 검사가 가능해졌다"며 “연구개발 성과가 실제 현장 운영과 안전관리 체계로 이어진 대표 사례"라고 말했다.
돼지 울음소리에서 시작된 '피그'의 역사
'피그(Pig)'라는 이름에는 흥미로운 유래가 있다.
초기 석유·가스 배관에서는 스펀지 형태의 청소 장비를 배관 내부에 투입해 이물질을 제거했다. 이 장비가 배관 벽면에 밀착된 채 이동하면서 돼지 울음소리와 비슷한 마찰음을 냈고, 청소 후에는 돼지처럼 지저분한 상태로 나왔다고 해서 '피그'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재는 단순 청소용 장비를 넘어 첨단 센서와 항법장치를 탑재한 검사 장비로 발전했다.
가스공사의 지오메트리 피그(KogasCalGeo)는 배관 찌그러짐, 타원화, 굴곡 등을 측정하고, 자기누설 피그(KogasMFL)는 자력을 이용해 부식과 금속 손상을 탐지한다. GPS·관성항법장치(IMU)를 활용해 결함 위치를 3차원 좌표로 산출하는 기능도 갖췄다.
검사 결과를 바탕으로 굴착·보수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결함 위치를 정확히 특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남은 과제는 '저압 배관' 국산화
하지만 아직 모든 구간을 자체 기술로 검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체 배관 중 약 27%는 구조적 특성이나 낮은 압력 때문에 기존 피그 적용이 어렵다.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설치된 20인치급 저압 배관은 유량이 적고 압력이 낮아 기존 장비가 안정적으로 주행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가스공사는 2019년부터 약 70억원을 투입해 차세대 인텔리전트 피그 개발에 착수했다. 저마찰 구조와 경량화 설계를 적용해 저압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주행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특징이다.
현재 실증 단계에 있으며 2026~2027년 실배관 검증을 거쳐 상용화가 추진될 예정이다. 대상 구간은 가좌~석수, 군자~상계 등 현재 해외 기술에 의존하는 수도권 저압 배관이다.
연구진은 “기존 기술의 단순 개선이 아니라 적용 가능한 영역 자체를 넓힌 차세대 버전"이라며 “실증이 완료되면 해외 업체에 맡기던 저압 배관 검사도 자체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AI가 결함 찾고, 사람은 최종 검증
가스공사는 피그 기술의 다음 단계로 AI 기반 데이터 분석도 준비하고 있다.
피그 1회 검사 시 수십 기가바이트 규모의 데이터가 생성된다. 구간 길이와 미세한 결함 여부에 따라 분석에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현재는 전문가가 전용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해석하지만 향후 AI를 활용해 결함 후보를 자동 분류하고 분석 시간을 단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연구진은 “완전 자동화보다는 전문가를 지원하는 형태가 될 것"이라며 “해외 선도업체들도 AI를 분석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차세대 저압용 피그 상용화 이후에는 초고해상도(Ultra High Resolution) 자기누설 피그 개발도 검토하고 있다"며 “국내 천연가스 공급망 안전을 위한 배관 진단 기술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