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의 첩경은 사실 한국전력(이하 한전)의 발전 자회사 매각를 통한 전력 도매시장의 경쟁 촉진이다. 경쟁 촉진이란 말만 나오면 거품을 물며 민영화 프레임을 씌우려는 경우가 많다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기후환경에너지 정책을 연구하는 입장에서, 특히 한입으로 한전자회사들 매각에 학을 떼면서도 탈석탄을 동시에 외치는 자가당착에 대해선 할 말이 많다. 사실 공공기관의 공공성 사수는 기후위기대응 정책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둘 중 누가 선순위인지는 이미 공감대가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발전자회사들이 진작에 기업공개(IPO)를 거쳐 민간 매각되었다면, 탈석탄이라는 정책적 목표는 애초에 이렇게 저항에 가로막혔을 리가 없다. 민간부문이라면 이렇게 기후변화 억제라는 대의명분에 조직적 저항을 할 수 있었겠나? 현재 가스발전을 주로 하는 민영 발전소들이 전력거래소의 급전 지시나 이익 정산에 어디 찍소리나 할 수 있던가. 만약 석탄발전소가 민간 매각되었다면 이미 기존 온실가스 감축계획에 따라 도와주는 정부 부처도 없이 소리 소문 없이 퇴출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뜬금없이 한전 자회사 발전사들의 모회사인 한전과의 재통합 논의가 나왔다. 1999년 전력산업 구조개편으로 한전에서 분리된 발전 자회사들이 자체적으로 별도의 조직을 운영하면서 제각각 의사결정이 이뤄지고, 최근의 연결재무제표로 연결된 한전의 적자 상황의 원인으로 지적된 것이다. 김동철 한전 사장도 자회사 간 비협조로 인한 비효율도 한전적자 해소를 위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를 뒷받침하듯 전력노조도 다시 한전의 직원이 되고자 하는 바램으로 재통합론을 오랫동안 지지해 왔다. 심지어 지난 국회에서는 발전자회사 구조개편 방안으로 이들 자회사들을 신재생에너지/화력/원자력으로 나줘서 자회사간 비효율적인 경쟁을 제거하고 한전 자회사들이 각 분야에서의 독자적인 시장 지배력을 주자는 의견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경제학을 하는 입장에서 이러한 제안들은 경쟁을 통한 효율성이란 시장경제의 장점을 거세(去勢)하는 것을 공통점으로 가진다. 오히려 지나친 경쟁을 통한 비효율성으로 전력 생산 단가가 높아져 한전의 적자이 심해지는 원인이라는 식으로 주장한다. 하지만 사실 전력시장에선 그런 걱정을 할 정도의 경쟁이 제대로 있어본 적도 없다는 것은, 전력업계에 몸담은 이들이라면 모두가 안다. 이익배분 구조부터 민간사들은 공공자회사들과는 아예 다른 처우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치열한 경쟁을 통한 허리띠를 졸라매는 적자생존이 이뤄지지 않으니 발전단가는 최대한으로 내려 갈리 만무하다.
이러한 경쟁시장의 부재는 1999년 당시 발전자회사 매각 계획에 대한 한전 및 발전 자회사 노동조합의 강력한 반발에 기인한 바 크다. 매각이 이루어질 경우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경쟁적인 시장경제에서는 자연스럽게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이 상시 이뤄질 수 있는 요소였기에, 당장 눈에 보이는 노조의 반발은 당시 사회적 갈등을 심화시켰다. 게다가 민간 매각이 전력가격 상승을 초래할 것이란 오해가 개혁에 대한 사회적 여론 악화를 일으켰다. 가격은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형성될 때 가장 효율적인 수준이 될 수 있음에도 말이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IMF 외환위기 이후 경제 위기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었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장기적인 경제 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되었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 이러한 구조적 변화가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되었고, 개혁 속도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그래서 현재의 어정쩡한 상태, 발전자회사 형태로 형식적 분가는 하였으되 아직은 연결재무로서 탯줄이 연결된 상태가 되었다. 발전자회사들을 민간에 매각하지 못한 채 발전공기업 형태로 두게 된 것이다. 자립할 능력도 안되면서, 분가하면서 부모한테 집 사달라 생활비 따로 달라는 자녀로 인해 초래되는 가계 경제의 비효율성을 떠올리면 된다. 별도 법인화 되면서 같은 지역에도 한전과 자회사별도 별도 지사가 설립되고, 임원부터 실무진까지 모두 별도로 운영하고 있다. 이제 와서 한전과 자회사들을 재통합하면 중복 기능 인력들이 풍년을 이룰 것이다.
전력 도매시장의 완전 경쟁체제 구축 실패에 대한 대가는 컸다. 비효율성은 곳곳에 내재되어 오히려 소비자들이 내는 부담을 가중시켜 왔다. 앞서 설명한 적자를 겪고 있는 모회사인 한국전력, 그 적자의 기준이 되는 발전원가가 경쟁부재로 인해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 그걸 또 기준으로 발전사별로 다르게 배분되는 이익구조로 인해 불만이 팽배한 민간 발전사들, 이러한 비효율적인 상황에서 결정된 전기료를 아무 말없이 수용해야 하는 국민들, 경쟁적 전력시장이 없어서 하는 수 없이 전력가격을 직접 결정해야 하는 악역을 맡아야 하는 집권당과 정부, 이에 덧붙여 나름 선진국이라는 한국에서 이러한 비경쟁적 전력시장으로 인해 기후변화 억제 정책도 먹히지 않는 상황이 의아할 뿐인 해외의 시선들.
정치권력이 마무리 짓지 못한 어중간한 전력시장 개혁을, 행정부처가 어쩌지 못하는 입장도 십분 이해가 간다. 게다가 산하기관 및 발전공기업들은 담당 정부부처와 오랜 인력교류로 한 몸으로 얽힌 상황이다. 기후변화 억제라는 정책적 목표를 위해는 제살을 자르는 고통도 감수해야 하는 정부의 책무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제 식구 챙기느라 어정쩡한 태도밖에 취할 수 밖에 없음을 여러 경로를 통해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결국 지금처럼 한국전력과 여전히 탯줄로 연결되어 임의로 이익을 정산 받으며 정부로부터 성에 차지도 않는 보호를 받으며 겨우 괴로운 명줄만 지탱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국 불만족스러우니 자회사 매각은 커녕 재통합에 미련을 가지며 시계를 거꾸로 돌리자는 것이다.
그래서 이도 저도 머리 아프고 한국전력의 적자는 해소해줘야 하니, 기후변화 대응 핑계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전기가격만 올리자는 의견이 대세이다. 기존 전력부문의 비경쟁 상황 (재통합이든 현재의 무늬만 자회사 분할)도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러한 비효율성은 그냥 일반 국민들이 십시일반 갹출해서 메꾸자는 거다. 물론 앞서 언급만 문제 중 몇 가지는 해결한다는 측면에서 미봉책으로 가능하다. 하지만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혹은 소비자 권리 측면에서, 경쟁을 통하지 않은 이런 묻지마 식 가격 인상을 수용하기가 매우 찝찝하다. 이대로는 여전히 발전 전환부문의 탈탄소는 저항이 거셀 것이고, 탄소시장과 같은 기후위기 대응 정책도 영원히 겉돌 것이다.
요컨데, 전기가격 조정 논의보다 도매 전력시장 정상화가 먼저이고, 이는 종 기후변화 억제 정책들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선결 조건이다.
유종민
[EE칼럼] 경제안보를 위한 장기적 관점의 자원개발이 필요하다
2024.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