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대륙에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는 영어 사용국인 미국과 캐나다는 자동차를 운전해 톨게이트형 국경검문소에서 간단한 통관절차만 거치면, 양국 간 무비자 여행이 가능해, 묶음 관광으로 함께 여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어느 방향이든지 국경을 통과하여 상대편 국가 도로로 진입하면 속도제한 표시판에 속도 단위가 “mph"(miles per hour, 미국)와 “km/h"(캐나다)로 다르다는 점을 쉽게 알아차린다. 문제는 우리 같은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는 단위 전환계산이 여간해서는 쉽지 않다는 점. 특히 단위 전환계산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고속도로라면 더욱 곤혹스러울 수 있다.
이와 유사한 계산적 어려움이 자동차 표시연비에도 존재한다. 자동차 표시연비 제도는 소비자가 고효율, 저탄소 차량을 선택하도록 돕기 위해 연비 정보를 라벨이나 광고를 통해 제공하는 정책이다. 이 제도의 실효성은 그만큼 연비 정보의 정확성과 함께 소비자의 정확한 인지 여부에 달려 있다. 물론 “연료 1L당 주행 가능한 거리(km)"라는 표시연비 정보의 단순성을 고려한다면, 표시연비 자체를 소비자가 인식하기 어렵거나 오해할 소지는 극히 낮다. 다만, 표시연비 정보를 아는 것 자체 보다, 해당 정보를 잘 해석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소비자는 차량을 구매할 때 연료비를 고려하기 위해 표시연비 정보를 참조한다. 이때 연료비를 대충이라도 어림잡아 추정하기 위해서는 연비와 연료비 간의 상관관계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문제는 현행 제도에서는 소비자가 알 수 있는 표시연비 단위가 단지 “단위 연료 소비량당 주행거리(km/L)"로만 표시된다는 점이다. 가령 100km 주행에 드는 연료비를 계산하려면 이를 다시 “단위 거리당 연료 소비량(L/km)"으로 전환, 다시 말해 역수(逆數)로 만든 후 연료 가격과 100km를 곱해주어야 한다. 다시 말해 연료비 계산에는 연비에 대한 분수 계산, 즉 비선형 함수 계산이 요구된다.
사실 간단하더라도 덧셈, 뺄셈, 곱셈과 달리, 나눗셈은 계산이 그리 쉽지 않다. 가령 보통 사람은 “53/2 =?"과 같은 아주 기초적인 나눗셈 문제라도 “53+2 =?"같은 덧셈 문제만큼 힘들이지 않고 자동적․즉각적으로 풀기 힘들다. 상대적인 계산의 시간적·인지적 부담 때문에 보통 자연스럽게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 쉽게 표현하면,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생각의 게으름'이 일반적이다. 대신 지금 당장 눈앞의 명시적인 정보 자체에만 집중하여 연비와 연료비의 상관관계를 대충 어림잡아 짐작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인간의 의사결정의 인지적 한계를 다루는 행동경제학 연구들은 이와 관련해 실제 소비자들이 연비 정보를 선형적 관계로 오해하는 경향, 쉽게 말해 표시된 연비가 두 배로 증가하면 연료비도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음을 밝힌 바 있다. 그리고 이를 “연비 단위(MPG)로 인해 유발된 착오", 즉 “MPG Illusion" 현상이라 명명하였다.
그러나 실제로 계산해보면 그렇지 않다. 가령 복합연비가 6km/L인 고급 세단과 15km/L인 소형차에 대해 각각을 4km/L 정도 연비가 향상된 차로 교체하면, 저연비 고급 세단이 고연비 소형차에 비해 실제 연료비가 절감되는 효과는 약 5배 정도 크다. 얼핏 같은 연비개선 효과라면 같은 연료비 절감효과가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에너지경제연구원은 국내 소비자의 경우, 대략 연비 10km/L 언저리에서 벗어나면 벗어날수록 왜곡도 심해지며, 특히 고연비 차량에서의 연비개선보다 저연비 차량에서의 연비개선 효과가 크기 때문에 이 같은 착각의 정도는 더 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연비 단위만 유럽이나 캐나다 등이 쓰고 있는 L/100km로 바꾸어주면 된다. 물론 현시점에 이미 관행화·습관화된 표시행태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란 큰 사회적 비용이 수반될 수밖에 없다. 대신 현행 연비표시 라벨상 표시연비 정보에 두 가지 표시단위 km/L와 L/100km를 병행 표시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현행 연비표시 라벨 상 표시연비 정보에는 도심 연비, 고속도로 연비 및 복합연비 정보가 포함되어 있는데, 세 가지 연비 정보 모두 두 가지 표시단위로 나타낼 경우의 번잡함을 고려하여, 상대적으로 강조된 복합연비만 두 가지 표시방식으로 기재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한다.
김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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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