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 전력시장 정상화 빠를수록 좋다

2024.10.10 10:58 댓글 0
▲이창호 가천대학교 에너지시스템학과 교수


제주도를 대상으로 전력시장 제도개선을 위한 시범사업이 진행 중이다. 시범사업에는 실시간시장, 예비력시장, 재생에너지 입찰제도가 포함되어 있다. 내년 말까지는 이를 전국으로 확대한다니 전력산업의 오래된 과제인 시장 정상화가 머지않아 이루어질 것 같다. 지금 우리 전력산업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 중 많은 부분이 비정상적인 전력시장에 원인이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설비투자, 연료비용. 발전입지 선정과 송전망 확충, 재생에너지 적정수익, 전기요금 문제가 산적해 있다.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했다면 이러한 문제의 많은 부분이 발생하기 않았거나 해결되었을 것이다.

우리 전력시장은 시작부터 시장기능이 제한된 상태였다. 당초 짧은 이행기간을 거쳐 본격적으로 도입할 계획이었던 전력시장은 20년 넘게 피일차일 미뤄져왔다. 아직도 비용기반시장(CBP)라는 이름 하에 비용평가, 보정계수라는 수단에 의존하고 있다. 시장가격은 본래 수요공급 이론에 따라 수익과 비용에 의해 결정된다. 가변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연료비의 경우 계약-도입-사용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입선과 시차가 있다. 도입가격도 장기계약, 현물, 선물시장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처럼 국제유가의 등락이 커지면 비용의 변동도 커지게될 것이다. 비용평가가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운 구조다. 공급비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도매시장 가격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소매요금 즉, 전기요금과의 연계성도 줄어들게 된다. 전기요금 정상화에 가격기능의 역할이 필요한 이유이다.

전력시장 개선에 대한 논의는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되었다. 2015년 이후에는 민간발전사의 비중이 커지고 민간석탄발전이 도입되면서 현물시장뿐 아니라 CfD와 같은 차액계약의 필요성도 대두되었다. 당시 전력거래소에서는 가격입찰, 계약시장 및 실시간시장 도입을 위해 관련 제도와 시스템 보완 등 시장개선 로드맵을 의욕적으로 제시한 바 있다. 이러한 계획은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졌으나, 아직도 실행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작년부터 제주도를 대상으로 전력시장 개선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제주에서의 시행결과를 토대로 이르면 내년부터는 전국적으로 확대 시행할 것으로 계획되고 있다.

이렇게 된다면 지금까지 어정쩡하게 운영되고 있는 '재생에너지인증서(REC) 시장', 수요자원(DR) 시장, '소규모전력중개시장'등도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통합되거나 새롭게 재편될 수 있을 것이다. 에너지시장을 기본으로하되 용량시장, 보조서비스시장을 별도로 운영하여 공급과 계통운영의 안정성을 담보할 필요가 있다. 또한 에너지산업의 변화와 진화에 발맞추어 재생에너지, 분산에너지, 수요자원, 저장자원 등 친환경 신기술의 확대를 위한 규제시장의 정비도 필요하다. 이중 일부자원은 이미 경제성 확보가 가능하거나 경쟁적 시장에서도 차익거래(arbitrage)나 용량공급, A/S서비스 공급, 송배전 회피편익을 통해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 앞으로 도입될 전력시장은 이러한 요인들을 적절히 담아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관건은 전력시장이 자원의 기여도와 편익을 공평하고 적절히 반영해줄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의지 문제다. 이를 위해서는 대규모 레거시 전원에 초점이 맞추어진 전력시장 운영방식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와 재편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먼저 기존의 비용평가방식에서 실시간 가격입찰이라는 본래의 시장기능으로의 전환이 조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시장은 시장참여자의 판단하에 투자와 수익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이러한 기능이 원활히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 전력시장의 선결 요건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전력시장 입찰도 시장가격 왜곡을 방지하고 재생에너지의 기여도를 반영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방향이다. 다만, 재생에너지의 특성과 과도한 수익 변동을 방지할 수 있는 보완책 마련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나라 전력수급에서는 공급안정성 확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피크시 공급지장을 방지할 수 있는 적정 용량확보가 필수적이다. 시장참여자가 제공하는 용량에 대해 정당한 대가를 반영할 수 있도록 용량시장의 개선이 필요하다. 단순히 기존전원의 고정비용에 대한 최소한의 보전이 아니라 전원의 유형에 관계없이 보장용량(firm power)의 제공이 가능한 전력자원에 대해서는 용량입찰을 통해 용량비용 지불이 필요하다. 실제 지불액 수준은 약정용량에 대한 이행율에 따르면 될 것이다. 나아가 기존의 용량지불에서 탈피하여 미래 예상되는 적정 설비규모(adequacy) 확보를 목적으로 하는 용량시장의 개설도 필요하다. 미래시기에 대한 용량입찰을 통해 용량시장이 자연스럽게 수급계획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유연자원시장도 다양한 수급자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문호를 더 넓혀야 한다. 대상자원을 태양광, 풍력과 ESS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DR, EE와 같은 수요자원은 물론 DER의 범주에 드는 신기술 분산자원의 참여도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여야 한다. 양질의 집합자원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전력시장의 문을 더 열어야 한다. 이를 통해 전력시장의 유연성 확보와 자원의 다양성이 넓어질 수 있을 것이다. 시장기능의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분산자원의 활용성 확대와 에너지산업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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