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E칼럼]송전망 신뢰도 기준과 위험관리 시스템 제대로 검토해 보자

2024.12.05 10:58 댓글 0
▲조성봉 전력산업연구회 회장


십수년 전 잘 아는 선배 교수의 아프리카 여행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낡은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를 탔는데 비행기 안쪽에 “1935년부터 자랑스럽게 운행 중(Proudly serving since 1935)"이라는 라벨을 보고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고 한다. 소형 프로펠러 비행기라서 불안했는데 이에 더하여 1935년부터 운항한 낡은 기종이라는 것을 알고는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증폭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걱정을 눈치챘는지 같이 갔던 일행 중 한 분이 이 비행기가 가장 안전한 기종이라고 알려 줬다고 한다. 이유인즉슨 1935년에는 비행기의 제작과 작동 메커니즘에 대한 세부적인 설계 및 과학적 원리가 정밀하지 않아 무조건 최고의 안전도 기준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거의 사고가 나지 않는 기종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기준으로는 지나치게 비용이 많이 들고 무거워 기름도 많이 드는 비행기라는 설명도 함께 들었다고 한다.

지금의 우리 전력망을 운용하는 신뢰도 기준이 이러하지 않나 생각한다. 필자는 전기공학자가 아닌 경제학자여서 기술적인 내용까지 잘 이해할 수는 없으나 전기공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서로 나뉘고 있다는 점은 쉽게 눈치챌 수 있다.현재 전력 당국은 전력망 운용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전력망에 비상사태가 생겼을 경우를 가정한 이른바 'N-2'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N-2 기준은 폭풍과 산불 등 자연재해가 발생했을 시에도, 2회선이 고장났을 때에도 전력망 운용이 가능할 정도로 신뢰도를 적용한 경우이다. 낙뢰나 산불이 났을 때 2회선 고장이 발생할 개연성이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한 전문지의 조사에 따르면 낙뢰나 산불 등 불가항력의 자연재해에 의한 고장도 2005s년-2023년간 국내 765kV 송전선로 누적 고장건수 71건 가운데 61건이나 된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N-2라는 보수적인 기준이 필요한 이유도 수긍이 된다.

신뢰도 기준을 완화하는 것도 공짜는 아니다. 전력을 더 보낼 수 있지만 리스크가 커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일이 그렇다. 리스크를 줄이려면 느는 비용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비용을 줄이자면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는 제도적인 문제점도 따른다. 기술적 조작도 시간이 걸리고, 특정 지역이나 선로에만 기준을 달리한다면 형평성 문제와 이해관계자의 항의와 민원이 빗발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신뢰도 기준에 대해 지속적으로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전담 컨트롤 타워나 전문역량이 없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그렇다고 넋 놓고 송전망 새로 지을 때까지 마냥 기다리는 태도이다. 신뢰도 문제도 때와 상황에 따라 상세하게 구분해서 각각의 리스크와 대처 방안을 검토해 봐야 한다. 낙뢰와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를 우려해야겠지만 일년 내내 낙뢰 가능성이 있거나 산불이 나는 것은 아니다. 어렵다면 미리 예측하고 판단할 수 있도록 자원을 투자해야 한다. 전력수요도 항상 일정하게 부하가 걸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주말과 주중으로 나누고, 피크 때와 저부하시를 나누어서 상황별로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세부적으로 검토도 해봐야 한다. 고속도로 버스 전용차선도 시간대별로 적용하는데 송전선도 그런 세부적인 검토를 왜 못하는가?

기술과 과학이 발전하는 것은 이런 어려운 상황이 생겼을 때 이를 구체적으로 세분화해서 분석해보고, 제도적인 장치도 마련하며, 이를 규정과 법과 필요시 경제적 인센티브로 뒷받침할 수 있는 노력을 하기 때문이다. 송전망에 대한 신뢰도 기준과 위험관리 시스템을 검토하기 어렵다고 포기하며 수조 원씩 들어가는 전력망 공사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있는 자원을 가지고도 지혜롭게 쓸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연구해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조성봉

데이터센터

국제환율(미국 USD 매매기준율)

국제환율(일본 JPY 매매기준율)

탄소배출권(KAU24)

최대전력수급

국제수지(경상수지)

국내 석유제품 가격 동향

MICE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