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마침내 142년 석탄 발전 역사를 마감했다. 지난 9월 30일 마지막 석탄 발전소인'랫클리프 온 소어 발전소'를 중단함으로써 영국은 석탄 발전소를 완전히 없앤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영국은 세계 최초로 석탄 발전을 시작한 국가이었기에 이번 석탄발전소 완전 폐쇄는 문명사적 의의가 크다. 영국은 산업혁명의 발원지로서 지난 200년 넘는 기간 동안 석탄과 함께 성장한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토머스 에디슨이 1882년 세계 최초로 건설한 홀론 바이덕트 석탄발전소는 런던의 거리를 밝혔다.
그 후부터 20세기 기간 내내 석탄은 영국 발전의 기둥이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석탄의 발전비중은 80%에 달할 정도였다. 그 후 북해 천연가스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 석탄의 비중이 점차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최근까지 중심 전원이었다. 실제로 2012년에도 석탄은 영국의 전력 발전의 39%를 차지했다. 하지만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기후변화가 전 인류의 공통 의제가 되면서,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은 분명한 목표가 되었다. 영국은 2008년 법적 구속력이 있는 기후 목표를 수립하고, 2013년 에너지법 개정을 통해 2025년을 목표로 석탄발전 중단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단 12년 만에 석탄발전 비중을 39%에서 0%로 낮추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석탄 발전 비중은 2022년 기준 39.7%로 우연히도 영국의 2012년 수준과 거의 같다. 수치만 단순 비교하면, 우리도 영국이 해낸 것처럼 12년 만에 석탄발전 퇴출을 못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그러다보니 일부 환경단체는 이번 영국의 사례를 앞세우며, 국내 석탄발전소 옥죄기에 더 한층 나서고 있다. 이미 탄소중립 2050 계획에 따라 전국 석탄발전소 59기 중 28기를 단계적으로 폐쇄하여 2038년 석탄발전 비중을 10.3%까지 대폭 낮추는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수립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불만을 표시하며 2030년까지 모든 석탄발전소를 중단해야 한다는 주장도 서슴지 않고 있다. 이쯤 되면 석탄발전 옥죄기를 넘어 죽이기에 가까워보인다.
영국의 탈석탄 과정은 우리의 모델이 될 수 없다. 영국의 석탄발전소는 지난 2013년 기준으로 평균 사용기간이 45년가량으로 이미 상당히 노후화된 상태였다. 이번에 마지막으로 폐쇄된 석탄발전소도 1967년에 건설되어 약 55년 만에 퇴출되었다. 사실 영국에서 석탄은 마가렛 대처 수상의 탄광노조 개혁 이후 줄곧 하락 추세를 보이며 2000년대 이후에는 전력계통에 노후화된 석탄발전소들만 대부분 존재하던 상황이었다. 영국의 석탄발전소는 특별한 조치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퇴장의 수순을 밟고 있었다는 말이다. 환경규제가 날로 강화되는 마당에 북해 천연가스를 상대적으로 싸게 쓸 수 있는 영국에서 굳이 석탄발전소를 신규로 건설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국의 최근 석탄발전 중단 정책은 쇠퇴해 가던 석탄에 마지막 쐐기꼴을 박은 정도지 추세를 뒤바꾼 혁명적 정책은 결코 아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동 중인 석탄발전소는 대개 2000년 이후 준공된 비교적 신규 발전소에 가깝다. 특히 2011년 전력부족 사태를 해결하고자 허가했던 민간석탄발전소는 2020년 전후로 가동을 시작한 최신발전소다. 이들 발전소는 경제성 높은 소위 잔여발전량을 아직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영국 사례와는 완전히 다르다. 옆집이 20년 된 고물 자동차를 폐차했다고, 엊그제 구입한 에너지효율 1등급 새 자동차를 덩달아 폐차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탄소중립을 명분으로 분별없는 석탄발전소 때리기는 지양해야 한다. 무리한 탈석탄은 제 발등 찍기가 될 수도 있다. 전 세계 에너지빈곤 현황을 고려할 때 모든 국가의 탈석탄 동참은 여전히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국내 석탄발전소는 이미 석탄발전 상한제, 송전제약, 지역별 요금 차등 등으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스스로 문을 닫을 판이다. 에너지효율 높은 최신 석탄발전소가 자의든 타의든 조기 중단되는 것은 절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정이 전혀 다른 해외 사례에 기대어, 멀쩡한 최신 석탄발전소를 조기 폐쇄해야 한다는 주장은 신중해야 한다.
과거 수 백 년에 걸쳐 진행된 에너지전환을 나타내는 장기 에너지 대체 곡선을 보면, 특정 에너지의 시장점유율이 1%에서 10%까지 도달하는데 예외 없이 40~50년이 걸렸고, 50%에 도달하는 데 100년 이상 걸렸음을 알 수 있다. 과거 인류가 경험한 에너지전환 과정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현재 진행 중인 탄소중립 에너지전환에 대한 시각도 좀 더 객관적이야 한다.
박주헌
[EE칼럼]기후변화 대응 막는 전력시장 경쟁 부재: 한전 자회사 재통합 논쟁
2024.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