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두 달 동안 기록적인 폭염이 이어진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악영향을 그야말로 몸으로 체험하였다. 그런데 막상 주변의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그들의 논의의 초점이 기후변화 대응 방안들과는 사뭇 다른 것을 알게 된다. 다들 기후변화가 진짜이며 매우 심각하다고들 말하지만, 내년 여름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하여 에너지절약이나 청정에너지의 자발적 생산 등이 아니고 여름철 더위를 식혀줄 대형 에어컨을 추가로 구매하며, 냉방을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현재 가정용 전력 요금의 누진제를 완화해 달라거나 아예 복지 차원에서 '냉방용 전기 사용 보장'을 해 달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 개개인의 처지에서 보면 당장 더위를 해결하는 것이 온실가스 등 원인의 해결보다 더욱 중요하게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온실가스배출로 인한 기후변화 문제는 오늘내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제적인 이슈화가 되어 온실가스 감축 협의가 시작된 것이 1990년대이니 20년이 넘은 이슈이다. 그런데 그동안 정부, 전문가나 환경단체들은 온실가스를 줄이는 '대응' 방안에 너무 몰두하는 바람에 막상 실제로 국민이 체험하게 되는 기후변화에 대한 '적응' 부분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닌가 한다.
지구온난화를 대처하기 위한 정책은 원래 온실가스 방출을 줄여 기온이 올라가는 현상을 억제하는 대응 방안뿐만 아니라 변화하고 있는 기후에 맞추어 지속 가능한 삶을 영위해 가는 적응 방안도 포함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영남지방의 토산품이던 사과가 이제는 강원도가 주산지이며, 제주도의 명물 감귤도 이미 경남이나 호남에서 재배되고 있으며 어쩌다가 잡히던 참치가 이제는 남해안에서 흔하게 잡히는 어종이 되었다. 농수산물 분야에서는 이에 적응하기 위한 다양한 신품종 기술개발과 산업의 조정은 물론 적을 위한 교육에도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가정과 상업 및 산업현장에서의 기후변화 적응 방안은 거의 만들어진 바 없다. 그저 허리띠 졸라매기 형의 에너지절약 방안만을 외치고 있었다. 예전에 사용하던 한 등 끄기나 냉난방 기간 제한, 차량 십부제 등의 조처가 요즈음에도 냉방 온도나 시간 제한하기 또는 제조업이나 상점의 냉방억제 등의 형태로 변화되었을 뿐, 최고기온이 35~40도에 달할 때 국민은 어떻게 냉방용 에너지소비를 하여야 하는 것인지는 이야기한 적이 없다. 그러니 국민은 이번 여름과 같은 폭염이 또 올까 두렵지만 기후변화에 적응할 방책을 모르니 결국 더 큰 용량의 에어컨을 구매하면서 전력 요금은 더 많이 깎아달라고 하는 에너지 복지의 차원에서 문제에 접근하고 만다.
사실 기업들은 이미 첨단기술을 사용하여 소비를 효과적으로 개선하는 '스마트한 에너지소비'를 시행한 지 오래다. 기업은 자기가 사용하는 에너지시스템을 선택하고 변경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정 및 상업 부분은 그렇지 못하다. 그렇다고 국민이 스마트한 에너지소비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선택의 권한이 국민에게 주어져 있지 않은 것뿐이다. 핸드폰으로 대표되는 정보통신산업은 이미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사용 용량과 요금제도를 가지고 있다. 똑같이 망(network)을 사용하는 전력산업은 그러나 이제 겨우 소비자가 자기가 원하는 검침 날짜를 선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전력 요금 역시 전 국민이 단일요금제도를 사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경직되어 있다. 한마디로 소비자는 스마트한 행동을 할 수 없고 단지 더 쓰고 돈 많이 내거나 아니면 덜 쓰고 덜 내거나의 두 가지의 선택만이 가능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의 95%를 수입하는 나라이지만, 그렇다고 여름철에 충분히 냉방을 하며 지내지 못할 이유도 없는 나라이다. 효율적이고 스마트한 에너지소비는 사회 미덕이자 국제경쟁력이다. 국민과 함께 스마트한 소비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기후변화에 적응할 대안을 제공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첨단기술이 국민의 선택을 보장하여 주고 국민은 스마트하게 생활하는 방안이야말로 진정한 에너지 복지 방안일 것이다. 이런 방안들이 현실이 되는 시기가 빨리, 가급적 내년 여름 이전에 올 수 있기를 기대한다.
허은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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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