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미국 SEC(증권거래위원회)는 기후공시를 의무화했다. 이에 따라 글로벌 3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시 기준으로 불리는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의 IFRS(지속가능성공시), 유럽연합(EU)의 ESRS(기업지속가능성보고표준) 그리고 미국 SEC의 기후공시 규칙이 모두 확정됐다.
미국, EU 등 선진국과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기후공시가 의무화되면서 기업의 ESG 공시 의무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 RE100(사용전력 100% 재생에너지로 조달), IRA(인플레이션감축법), REPowerEU(유럽연합의 신재생에너지 확대 계획), CBAM(EU 탄소국경조정제), SBTi(과학기반 탄소 감축 이니셔티브), IPEF(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등도 함께 대응해야 한다.
지난해 전 세계는 심각한 기후변화를 경험했다. 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서비스(C3S)에 따르면 2023년 지구 평균 표면 온도는 산업화 이전 대비 1.48℃가 상승했다. 국제사회가 목표로 한 1.5℃에 바짝 다가섰다. 365일 모두 산업화 이전 대비 1℃ 이상 상승했고, 해양 표층수 온도 역시 2023년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해양은 지구시스템 초과 열의 약 90% 저장하는데 2023년 세계해양에 저장된 열이 역대 최대폭으로 증가했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이미 420ppm을 넘어섰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발표한 「2023년 CO2 배출량(CO2 Emissions in 2023)」을 보면 2023년 전 세계 에너지 관련 CO2 배출량은 2022년 대비 1.1%인 4억 1000만 톤이 증가하여 사상 최고치인 374억 톤에 달했다.
2022년에는 전년 대비 1.3%인 4억 9000만 톤이 증가한 데 비해 증가율이나 증가량이 다소 줄어든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19년과 2023년 사이에 에너지 관련 총배출량이 약 9억 톤 증가했는데 2019년 이후 태양광, 풍력, 원자력, 히트 펌프, 전기 자동차 등 5가지 주요 청정에너지 기술의 보급이 증가하지 않았다면 배출량 증가 폭이 3배 더 커졌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IEA는 원자력을 청정에너지에 포함했고 원자력 발전량이 늘어나서 배출량 증가 폭을 줄인 것이라고 하지만 사실 전 세계 가동 원전 용량은 그 기간 오히려 줄어들었기에 정확히 말하자면 재생에너지(태양광과 풍력)와 히트 펌프, 전기자동차가 에너지 관련 CO2 배출량 증가를 그나마 둔화시키는데 기여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의 글로벌 모니터링 연구소의 연구에 따르면 대기 중 세 가지 가장 중요한 온실가스인 메탄, 이산화탄소, 아산화질소의 수준이 2023년 역대 최고 기록에 도달했고, 2024년 수치 역시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어 기후변화가 완화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 심해질수록,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면 할수록, 기후공시 및 기후 관련 규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선진국은 이미 기후변화로 모든 것이 바뀔 수밖에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기후변화 대응과 에너지전환, 재생에너지 확대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사회가 기후변화 총력 대응체제로 전환됨에 따라 기후변화 대응은 이제 그 자체로 경쟁력이 되었다.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의 '2024년 재생에너지 용량통계'를 보면 2023년 전 세계적으로 473기가와트(GW)의 재생에너지가 설치되어 전년 대비 무려 54%가 증가했고 신규 발전용량의 86%를 점유했으며 누적용량은 3870GW가 되었다. 기후 목표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3배 즉 향후 7년 이내에 7200GW 설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특히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중국의 재생에너지 확대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데 2022년 중국은 전 세계 나머지 국가를 합친 것(113GW)과 거의 같은 양(86GW)의 태양광을 신규 설치했고, 2023년에는 2022년 대비 두 배(217GW) 이상으로 늘려 전 세계 설치량 346GW의 63%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한편 IEA의 월간전력통계를 보면 202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이스라엘 제외)의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 점유율을 산술평균하면 53.6%인데 우리나라는 9.3%로 평균에도 크게 못 미치는 꼴찌인 것은 물론이고 대상 국가 중 10%를 넘지 못하고 한 자릿수에 머무는 유일한 나라다.
제조업 경쟁국인 독일 55.0%, 중국은 31.9%, 인도 21.8%에도 크게 뒤진다.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기후공시와 탄소 관세 등 무역장벽, 재생에너지 부족에 따른 불이익 등에 대비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재앙적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지난 3월 발표된 'RE100 연례보고서'에서는 우리나라를 재생에너지 조달이 가장 어려운 나라 중 하나라고 지목하면서 기업들이 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해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최근 미국에만 삼성전자가 반도체에 59.6조, 현대차 13조, LG에너지솔루션 7.2조, SK온 7.5조, 삼성SDI 3.3조원 등의 투자를 발표했다. 재생에너지 확보 능력이 자국 기업의 잔류와 해외 기업 유치를 결정짓는 핵심요소라는 것을 반증하는 사례다.
최근 발표되는 IEA,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 영국 싱크텡크 엠버(EMBER), 국제재생에너지정책네트워크(REN21) 등의 에너지 통계는 우리나라가 기후변화 대응과 관련하여 얼마나 위험한 수준인지 알려주는 지표이자,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기후리스크에 적극 대응하라는 준엄한 경고일지 모른다.
정훈식 기자 poongnue@ek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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