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악당(Climate Villain)은 기후위기 시대에 무책임한 대응을 하는 국가 또는 기업을 말한다. 국제기후단체인 '기후행동네트워크'는 해마다 12월 초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진행되는 동안 기후변화 대응이 진전하는 것을 '최선을 다해 막은' 4개 국가를 '오늘의 화석상'으로 뽑아 발표한다. 국제 기후변화 연구기관 컨소시움인 '기후행동추적'은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가들의 감축행동을 분석해 기후변화대응지수를 발표한다. 오늘의 화석상을 받거나 기후변화대응지수가 저조한 국가들이 기후악당으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게 되는데 지난해 우리나라는 오늘의 화석상을 받은 4개국 중 3위에 올랐으며 기후변화대응지수는 67개 중 64위를 차지했다.
처음 국제사회의 기후변화대응 노력이 기후변화협약으로 결실을 맺은 1992년 무렵에 기후악당들은 먼저 산업화를 이루어 그동안 온실가스를 배출해온 선진국들이었다. 그래서 기후변화협약은 '공동의 그러나 차별적인 책임'을 원칙으로 하여 기후변화에 책임이 큰 선진 38개국이 앞장서 탄소 감축에 나서는 교토의정서를 2008년부터 5년간 진행하였다.
탄소감축 노력에서 가장 진지하게 임한 유럽연합은 교토의정서의 감축 목표를 넘어서는 성과를 보인 데 비해 미국은 세계 1위의 에너지 소비국으로서 온실가스 누적 배출량에서 단연 선두임에도 정부가 바뀌면 교토의정서를 탈퇴하는 등 국제사회의 노력에 찬물을 끼얹어 기후악당 1호의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개발도상국가들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일단 표적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산업화에서 뒤져 누적 배출량이 적고 경제성장을 위해 당분간 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 증가가 어느 정도는 불가피하다고 용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0년 무렵부터 개도국에 대해서도 탄소감축노력을 강제하려는 쪽으로 분위기가 돌아섰다. 온실가스 배출에서 수십년간 부동의 1위를 지켜온 미국이 2005년 중국에게 자리를 내주었으며, 중국은 2018년 미국 배출량의 2배를 넘어섰다. 총에너지소비량에서도 중국은 2009년에 미국을 추월하여 2022년에는 두 배에 육박하고 있다.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는 개도국을 포함하여 모든 나라들이 탄소감축 노력을 해야 하는 쪽으로 논의가 진행되었고 결국 2015년 12월 파리협정이 체결되었다. 파리협정을 통해 각국은 자발적 탄소감축계획을 제출하고 2023년을 시작으로 5년마다 점검을 받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총에너지 소비와 온실가스 배출에서 모두 세계 8위를 기록하는 온실가스 주요 배출국 중의 하나이다. 1996년 OECD에 가입한 한국은 교토의정서가 논의되던 당시 감축의무국에 포함될 뻔도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개도국 지위를 유지하며 감축 의무를 지지는 않았지만 기후변화당사국총회에서 한국의 위치는 선진국과 개도국 중간으로 대우를 받아 왔다. 이에 따라 한국의 온실가스 감축 노력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며 애석하게도 지난해 성적은 중동의 산유국을 제외하곤 꼴찌를 기록하였다.
설상가상으로 새롭게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이 되어 그 동안 한국으로 향하는 화살을 분산해준 중국이 지난해 발전설비용량에서 재생에너지가 50.4%로 절반을 넘어섰다. 2023년 중국의 총 발전설비용량 2,920GW 중 재생에너지 발전설비가 1,472GW로 화력발전설비 1,390GW를 추월하였다. 기후변화 연구기관 '저먼워치'의 2024년 기후변화대응지수에서도 한국은 29.98로 '매우 낮음'을 받았지만 중국은 45.56으로 '낮음'을 기록하고 있다. 이제 기후위기 대응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세계인들의 시선은 한국으로 몰리게 되었다.
산업화를 최우선 과제로 달려온 개발도상국 중국이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이 되고서도 기후악당의 과녁을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 이미 재생에너지 분야 세계 최대 투자국으로 이름을 올렸다. 신산업 분야에 투자를 집중하고자 한 중국은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분야에 국가 자원의 배분을 높였다.
그 결과 태양광과 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 국내 보급을 지원하면서 보급률이 높아지고 관련 산업은 세계 시장으로 진출하였다. 현재 중국산 태양광 패널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85%이다. 전기차 세계 1위는 중국의 비야디(BYD)이며, 2차전지의 1위는 닝더스다이(CATL)이다.
재생에너지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기후악당이라는 비난을 피하면서 미래 먹거리 산업에서 우위를 차지한 온실가스 최대 배출국 중국, 3년 연속 재생에너지 신규 설비가 줄어들면서 관련 산업에서조차 변방으로 밀려나고 있는 한국, 이것이 2024년 한국의 모습이다.
4월10일 총선에서는 기후에너지 분야에 대해 올바른 이해와 정책을 내세운 정당과 정치인이 보다 많이 국회에 진출하여 역주행하는 기후에너지 정책이 제자리를 찾고 기후악당의 꼬리표를 뗄 수 있기를 기대하는 마음 간절하다.
신동한
[EE칼럼] 부산 플라스틱협약의 성공적인 출발을 기대한다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