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의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 서비스는 기후변화와 엘리뇨로 인해 2023년 2월부터 2024년 1월까지 1년 동안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1.52도 높았다고 발표했다. 파리협정에서 목표로 한 1.5도를 넘는 수치다. 파리협정은 수십 년에 걸친 지구 평균기온을 언급하는 것이므로 이미 목표를 벗어난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일부 과학자들은 1.5도 목표가 더 이상 현실적으로 달성될 수 없다며, 각국 정부가 더 빨리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한다.
기후변화 문제를 논의할 올해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9)는 11월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개최된다. 대륙별 순회 원칙에 따라 동유럽의 순서가 됐다. 동유럽 국가들이 만장일치로 개최국을 정해야 하는데, 러시아는 동유럽의 EU 국가에서 개최하는 것에 대해 반대했다. 최종적으로 개최에 필요한 자금과 시설이 갖춰진 아제르바이잔이 선정됐다. 지난해 당사국총회가 개최된 두바이에서 북쪽으로 1770km 떨어진 곳으로, 비행기로는 약 3시간 거리다.
아제르바이잔은 불이라는 뜻을 가진 페르시아어 '아자르'와 나라라는 뜻을 가진 아랍어 '바이잔'에서 유래했다. '불의 나라'라는 뜻이다. 예로부터 땅 위로 새어나온 천연가스가 불타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어 붙은 이름이다. 이 지역은 불을 숭배해 배화교라고 불리는 조로아스터교의 본산이었다. 기원전 6세기경 페르시아의 예언자 자라투스트라(조로아스터)가 창시했다. 이슬람 국가인 이 나라의 아테시카 사원은 조로아스터교의 성지 중 하나다. 바쿠의 석유에 대한 기록은 마르코 폴로가 쓴 '동방견문록'에도 나온다. 그는 “한 샘에서는 100척의 배에 한꺼번에 실을 정도로 엄청난 양의 기름이 뿜어져 나오지만 식용으로는 좋지 않다. 그러나 불이 잘 붙고, 가려움병이나 옴이 붙은 낙타에게 발라주면 좋다"고 썼다. 국내 여행 유튜버 1위인 빠니보틀이 석유 목욕을 한 곳이기도 하다.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바쿠는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 전 세계 석유 생산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면서 세계 최대의 유전지대로 이름을 날렸다. 초창기에 해외 자본에도 유전 개발을 허용했는데, 노벨 가문이 여기에 뛰어들었다. 노벨상을 제정한 알프레드 노벨의 두 형인 로베르트와 루드비그는 바쿠 유전의 개척자다. 이들은 1877년 노벨 브러더스 석유회사를 설립해 원유수송용 파이프라인을 건설하고, 유조열차도 만들었다. 1878년엔 세계 최초의 유조선 조로아스터호를 건조하기도 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치루면서 석유의 중요성을 절실히 체감한 독일은 바쿠 유전을 차지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특히 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독일은 극심한 석유 부족에 시달리자 1942년 바쿠 유전을 점령할 계획을 시도했다. 에델바이스 작전으로 명명된 이 계획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무산됐다. 자국 내에 풍부한 석탄으로 인공석유를 만들며 버티던 독일은 연합군이 인공석유 공장에 집중적인 폭격을 가하면서 결국 패망의 길로 들어섰다.
바쿠는 카스피해 최대의 항구 도시이다. 카스피해는 러시아, 이란, 아제르바이잔 등 5개국으로 둘러싸인 세계 최대의 내륙해다. 면적이 한반도의 17배나 된다. 육지로 둘러싸여 있어 호수로 보기도 하고, 크기가 워낙 커서 바다라고도 하며 논란이 있었다. 구소련 시절에는 소련과 이란이 카스피해에 대한 권한을 나누어 가졌으나, 1991년 소련이 해체되고 3개국이 새로 독립하면서 러시아와 이란은 호수, 신생 3개국은 바다라고 주장했다. 새로운 채굴기술을 이용해 카스피해에서 유전을 본격 개발하면서 연안국들 간에 첨예한 이슈가 되었다. 오랫동안의 논란 끝에 2018년 이들 5개국은 카스피해를 바다로 정의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인구 1000만 명의 아제르바이잔은 지금도 화석연료에 의존하고 있다. 미국 국제무역청에 따르면 2022년 이 나라의 석유와 가스 생산량은 GDP의 절반, 수출의 92.5% 이상을 차지했다. 바쿠 유전은 150여년을 채굴하면서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BP통계에 의하면 아제르바이잔의 하루 원유생산량은 2011년 93만2000배럴에서 2021년 72만2000배럴로 줄었다.
파리협정이 체결된 지 어느새 10년이 흘렀다. 올해 당사국총회는 국제 탄소시장의 근간인 파리협정 6조의 세부 이행규칙을 본격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회의의 의장으로 국영 석유기업인 소카르(SOCAR)의 부사장 출신인 무크타르 바바예프 환경자원부 장관이 임명됐다. 지난해 UAE에서 열린 'COP28'에서는 국영 석유기업인 애드녹(ADNOC)의 최고경영자인 술탄 알 자베르가 의장을 맡았다. 2년 연속 화석연료 업계의 고위직이 당사국총회를 주도하게 됐다. 아제르바이잔은 당초 온실가스를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35% 줄인다는 목표를 발표했으나, 2023년에 새로 제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에서는 2050년까지 40% 줄이는 것으로 목표를 후퇴시켰다. 산유국들이 기득권을 내려놓고 기후변화 완화를 위해 얼마나 진정성을 가지고 회의에 임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성우
[EE칼럼] 부산 플라스틱협약의 성공적인 출발을 기대한다
2024.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