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에서 진행된 한 자문회의에서 정부가 수소산업 진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 국내 수소경제 상황은 매우 긍정적이란 내용의 발제를 들었다. 그때 고개가 갸웃해졌다. 물론 우리 정부의 의지와 노력 자체에 대한 의심은 전혀 없다. 그러나 작금의 대한민국 수소경제의 상태를 과연 낙관할 만한 할까? 물론 관련 정책들이 만들어지고, 산업계도 투자에 관심을 표명하며, 수소경제에 대한 회의론을 불식시켜야 했던 2019년 이후 2~3년 정도 수소경제 추진 초창기에는 응원 차원에서 긍정적 인식을 적극적으로 유포하는 것도 필요했다. 하지만 6년이나 지난 2024년, 관련 정책들이 시행되고, 표명된 투자들도 이루어져, 이에 따른 성적표가 이미 나왔다. 아쉽지만 성적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우선 올해 10월말 기준 수소차 등록대수는 약 3만 7천대로, 지난 10개월 동안 고작 2천 7백여 대 증가한데 그쳤다. 수소차와 내연기관차 가격 패러티(parity)의 전제 조건인 연간 10만대 양산 규모 달성은 당초 내년으로 기대되었지만 이미 물 건너갔다. 제6차 수소경제위원회에서 설정한 2030년 30만대 보급목표 역시 지난 6년간의 실적을 볼 때 달성이 요원해 보인다. 수소차 보급 차질로 수송용 수소 공급 수소충전소․수소생산기지 등의 수익성은 크게 악화, 이미 자본잠식 상태에 들어간 사업자가 나왔다. 다만, 내년 신차종인 “이니시움" 발매와 함께 친환경차 구매목표제에 힘입어 수소버스 보급 확산세가 견조하다는 점은 위안거리다. 하지만 다른 복병인 수소 가격이 기다리고 있다.
현재 전국 수송용 수소 평균가격은 이미 kg당 1만 원대를 넘어선 상태다. 2030년 30만대 보급목표 달성은 차량 가격과 함께 수소가격이 충분히 인하되는 것이 필수적 전제다. 참고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의 2022년 수소충전소 공급가격 목표가 kg당 6,000원이었다. 더구나 실제 시장에서는 수소차가 경유차 대신 같은 친환경차인 전기차와 경쟁할 수밖에 없어, 수송용 전기 대비 비싼 수소가격은 수소차 보급에 큰 걸림돌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현재 유통되고 있는 수송용 수소가 전량 부생․추출수소임에도 불구하고, 이정도 가격대라는 점이다.
개정된 수소경제법에 따라 2027년부터는 수송용 수소에 청정수소 사용이 의무화된다. 국내 최초로 3.3MW급 재생에너지 연계 수전해 수소 생산시설로부터 그린수소를 공급받는 제주 함덕 수소충전소는 kg당 2만대에 수소를 조달, 1만 5천원에 판매 중이다. 이때 적자 분 5천원은 제주도청이 부담한다. 제주도를 포함 다수의 지자체들이 이 같은 청정수소 판매 수소충전소 확대를 희망하고 있으며, 더욱이 의무화가 시행될 경우, 확대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재정적 지원 방안이나 계획이 없다. 그래서 향후 매일매일 쌓이게 될 적자는 오롯이 사업자나 지자체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수소발전, 특히 연료전지 발전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매년 사업자들의 뜨거운 관심 속에 준수한 경쟁률을 보이고 있는 청정수소발전의무제(CHPS) 일반수소 입찰시장을 통해 올해까지 약 879MW 정도 보급되었다.
하지만 올해 처음으로 개설된 암모니아 혼소발전이나 수소혼소․전소발전을 위한 CHPS 청정수소 입찰시장 낙찰 결과는 시장에 적잖은 후과를 가져올 것 같다. 공고물량 6500GWh의 약 12% 정도만 낙찰을 받았는데, 낙찰 받은 발전사업자가 암모니아 인수시설 구축에 일정정도 정부 지원 등을 받았다고 한다. 바꾸어 말하면 현 발전단가 상한아래서는 정부지원이 없이는 해당 시장에서 낙찰자가 되기 쉽지 않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더욱이 이 시장이 얼핏 정부와 한전, 발전사만의 시장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수십 개의 해외 청정 암모니아 공급사들도 함께 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2030년까지 약 500만 톤의 대규모 청정 암모니아 구매 발주서를 전 세계 공급사에 보냈는데, 구매가격을 확인해 보니 본전치기가 의심되는 염가였다는 의미다. 그 만큼 청정수소 발전을 통한 수요 확대는 앞으로 험로가 예상된다.
하지만 백절불굴(百折不屈), 비록 지금까지의 성과가 기대에 못 미치고, 다양한 난관이 있다 하더라도 대한민국 수소경제는 앞으로 나갈 것이다. 다만, 정확한 처방을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도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다가올 2025년에는 새로운 전기를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김재경
[EE칼럼]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 전환의 갈림길에서
2024.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