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정범진 경희대학교 원자력공학과 교수
네덜란드 ASML은 세계 최대의 노광장비 제조사이다. 노광장비란 반도체를 생산할 때, 실리콘 웨이퍼에 집적회로를 프린팅하는 공정에서 자외선을 이용하여 태우지 않고 화학적으로 결합을 끊을 수 있게 해주는 장비이다. ASML은 매우 짧은 파장의 자외선을 사용하는 고정밀 장비를 생산하는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퍼을(乙)이라고 불리운다.
ASML은 2023년도 연차보고서에서 “2040년까지 고객 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생산·유통 과정에서 '넷제로'(Net Zero: 탄소 순배출량 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이 사실이 최초보도된 후 후속보도가 이어지면서 없는 말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ASML은 LNG나 원전 없이,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만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연차보고서 그런 말은 없다. 오보였는지 의도였는지 알 수 없지만 이후 몇 개의 매체가 이 오보를 그대로 인용하면서 이번에는 'RE100을 해야 한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RE100은 기업에서 사용하는 전기의 100%를 재생에너지로만 공급해야 한다는 영국 비정부기구(NGO)의 캠페인이다. 기후변화에 대처하기 위하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자는 것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원전을 이용해서 줄인 것은 인정하지 못하겠고 재생에너지를 이용해서 줄인 것만 인정하겠다는 것은 해괴한 주장이다. 목적과 수단이 도치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재생에너지가 지상과제가 되어버린다. 목적은 기후변화대처이고 재생에너지 사용은 수단 가운데 하나일 뿐인데 둘의 위치가 바뀐 것이다.
또 연례보고서에 ASML의 장비를 수입하는 삼성과 대만이 TSMC가 언급된 것을 놓고 두 개 회사를 '콕 찍었다'는 표현을 하면서 대만은 잘하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여졌다. 그런데 실은 대만 TSMC는 최근 일본에 공장을 짓고 있다.
ASML의 뉴스는 RE100을 주장하던 이들에게는 반가운 뉴스였을 것이다. 삼성전자가 영향을 받게 될 것이 걱정인 양 호들갑을 떨고 있지만 실은 RE100을 정당화할 수 있는 꺼리에 반색한 듯하다. 이후에는 왜곡된 뉴스를 그대로 믿고 신문 사설까지 이어지고 있다.
ASML의 연차보고서에서 '녹색에너지를 직접 구매함으로써 재생에너지를 늘리고 있다'고 되어있으며 100% 재생에너지라는 목표로 가고 있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나라가 재생에너지 100%를 달성하라'고 해석되지는 않는다. 연차보고서에는 ASML도 자체시설을 가동하는데 천연가스를 사용하고 있으며 2021년 이래 온실가스배출량이 줄지 않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재생에너지를 직접 사용하는 대신에 에너지인증서를 구매하여 재생에너지 사용인 것으로 장부상 상계처리를 하고 있음도 밝히고 있다.
또한 ASML사의 지속가능성 정책선언(Sustainability Policy Statement)에서는 3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가능한 한 에너지를 절약하라는 것. 둘째, 다른 해법이 가능하거나 가용하지 않다면 녹색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는 것.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이산화탄소가 있다면 보상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해법이 없다면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라'는 표현에 주목하면 원자력을 이용하여 이산화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수단이 있는 우리나라는 굳이 재생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ASML의 미디어 담당자와 직접 통화로도 확인하였다.
ASML사의 지속가능성 정책선언에는 다음 문구도 포함되어 있다. UN의 SDG(지속가능개발목표: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와 보조를 맞춘다는 것이다. 이 뜻은 CFE (무탄소에너지: Carbon Free Energy)를 말하며 이는 원자력을 포함하고 있다.
RE100이 설령 국제적 기업 활동에 압박으로 다가온다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따르자고 할 일이 아니라 우회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100%로 공급하면서 기업 활동을 할 수 없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 영국, 네덜란드 등에 비해 재생에너지 전력생산 단가가 2배 이상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주변국과 전력망이 연결되지 얺았기 때문에 고가의 전력저장장치도 더 많이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RE100을 향한 오보는 생산되고 유포되며 이제는 여기저기 논설에도 나온다. 아무도 원문을 읽지 않는다.
정범진
[EE칼럼] 부산 플라스틱협약의 성공적인 출발을 기대한다
2024.11.17